정부 “정시 30%로 늘려라” 했더니 고려대, 학생부교과 30%로 늘린다

입력 2019-04-25 04:05

고려대가 현재 고교 2학년이 치르는 2021학년도 대입부터 고교 내신 성적을 주로 보는 학생부교과전형을 대폭 늘리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인 정시모집을 30% 이상 늘리는 ‘정시 30%룰’을 회피하면서 줄곧 유지해 왔던 학생부종합전형(학종) 확대 기조를 유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24일 교육계에 따르면 고려대는 2021학년도 이후 입시에서 정시 30%가 아닌 학생부교과전형 30%를 택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와 교육부는 지난해 발표한 2022학년도 대입개편안에서 정시를 30% 이상 확대하도록 권고했다. 만약 정시 30%를 늘리지 않으려면 학생부교과전형을 30% 이상 늘리도록 했다. 서울권 주요 대학들이 정시를 늘리도록 유도하는 정책이었다. 고교 내신을 신뢰하지 않는 서울권 주요대학들은 학종 비중이 높았고, 학생 모집에 어려움이 있는 비수도권 대학들은 학생부교과전형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고려대는 일종의 ‘우회로’를 선택한 셈이다. 고려대는 최근 몇 년 동안 학종 비중을 급격하게 늘려왔다. 교육부 차관이 고려대에 정시 확대를 직접 요구했지만 거부할 정도로 학종에 대한 확신이 강했다. 고려대 입장에서 학종 비중을 유지하거나 늘리고 싶은데 정부가 정시 확대를 반강제로 밀어붙이니 나름의 해법을 모색한 것이다.

올해 고려대 입시에서 학생부교과전형 비율은 10.5%다. 이를 3배 늘려 30%로 확대하면 정시 30%룰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고려대 학생부교과전형은 최상위 학생들이 지원하기 때문에 내신 성적의 변별력은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면접에서 당락이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고려대는 면접을 통해 출신 고교가 어디인지부터 비교과 영역까지 두루 살펴 뽑을 수 있다. 게다가 높은 수준의 수능 최저기준을 설정할 가능성이 높다. 내신 성적은 물론 비교과와 수능까지 두루 잘해야 합격을 할 수 있다.

입시 전문가들은 학생 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우수 학생을 선점하려는 의도로 풀이한다. 정부의 정시 확대 방침을 대학들이 어떻게 무력화시킬 수 있는지 고려대가 보여줬다고도 본다. 다른 대학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고려대 학생부교과전형은) 매우 강도 높은 학종이라고 봐야 한다. 정부가 학생부교과전형의 정의를 분명하게 하지 않고 내신 성적 반영 비율을 ‘50% 이상’으로 모호하게 정의하면 예전보다 못한 입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