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복 없다고 한탄하던 나… 주님 만나 매일 복된 삶

입력 2019-04-29 00:09

물리치료사로 취직하고 출근한 첫날 아침 조회시간에 예배부터 드렸다. 열정적 불교신자였던 나는 황당한 이 장면 앞에 예배를 드릴 수도 거부할 수도 없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하며 지내던 어느 날 치료 받던 어느 할머니가 “아가씨, 하나님 믿어! 그래야 복을 받지.” 했다. 어려서부터 ‘너는 정말 복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나는 할머니 말과 직장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며 예배, 성경공부, 기도회, 그룹모임까지 열정을 쏟았다. 목사님 아들과 결혼도 하고 성경의 지식이 쌓이니 하나님을 점점 알아가는 것 같아 더욱 신났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얼마나 더 배우고 시간이 흘러야 하나님을 만나지?’ 의심은 커졌고 마음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그러다 시어머니가 해외여행 중에 쓰러졌다. 먼 외국이라 가족들은 발만 동동 굴렀고 교회는 전체가 계속 중보기도를 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현장에서 수술을 하고 귀국했지만 심근경색으로 뇌 기능의 마비로 혼자 거동이 힘들어졌고 내 생활도 휘청거렸다. 나의 직장 때문에 먼 춘천까지 와서 우리 가족에게, 이젠 시집까지 챙겨야하는 천정어머니께 죄인 된 심정이었다.

그때 큰 딸이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았다. 5학년 어린 나이에 딱딱한 플라스틱 갑옷 같은 보조기를 늘 입어야 했다. 숨이 턱턱 막히고 통증은 상상을 초월했다. 학교에서는 늘 보건실에 누워있고 몸은 점점 야위어갔다. 과호흡으로 119에 실려 가기도 했고 눕지도 못하고 주먹 크기의 상처까지 겹친 통증에 소리없이 눈물만 줄줄 흘리는 딸을 보니 마음이 무너졌다. ‘하나님! 왜 이렇게 감당할 수 없는 아픔만 주시나요?’ 내 기도는 온통 원망뿐이었다.

그때 교회에서는 ‘부활을 아는가. 믿는가’라는 말씀으로 회개간증이 쏟아졌지만 내 귀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유정아, 네가 나를 믿니? 네가 부활을 믿니?’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내게 물으셨다. 나는 제자들의 변화된 삶과 증거들을 통해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임을 잘 알고 있었고 그분이 하나님임도 믿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유가 ‘산 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을 나는 몰랐고 한 번도 굴복해 본 적이 없었다. 부활을 아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착각하며 예수님과 전혀 상관없이 내가 주인 되어 살았던 죄가 정확히 보였다. 무거운 짐을 나 혼자 짊어지고 내 힘으로 해결하려 했던 악랄한 자였다. ‘철저히 내가 주인 되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은 죄!’ 그대로 꼬꾸라져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을 내 마음에 주인으로 모시니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9년째 병상에 계신 어머니를 돕고 힘든 딸을 돌보는 일도 온전히 주님께 맡길 수 있었다. 눈물겨운 정성으로 보살펴준 선생님의 영향으로 딸도 예수님을 만난 후 저처럼 힘든 아이를 돕는 교사의 꿈을 꾸며 보조기의 불편함과 고통을 참으며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다. ‘나는 잘 할 수 있어’라며 공동체 안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며 밝고 착하게 자라 학교 대표로 모범학생 표창도 받았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던 딸은 공동체의 끊임없는 기도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춘천교대에 합격해 대학생활을 성실히 하고 있다.

불교집안인 우리 집안이 기독교 집안으로 바뀐 것은 정말 꿈만 같다. 친정아버지는 70이 되어 예수님을 믿고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라며 바로 제사를 끊는 놀라운 일도 있었고, 삼촌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해맑은 얼굴로 천국에 가셨다.

내가 근무하는 요양병원에도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매일 기쁜 얼굴로 함께 예배를 드린다. 오늘도 나는 모든 눌림에서 자유하게 해주신 부활하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오직 주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는 사명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유정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