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삼수, 홍영표 재수… ‘중진의 꿈’ 원내대표가 뭐길래

입력 2019-04-27 04:01
일러스트=이은지 기자

1년에 한 번, 여의도 국회에서는 ‘국회의원들끼리의 선거’가 열린다. 유권자가 100명 안팎이라 한 표 한 표가 더없이 소중하다. 의원 한 명의 마음을 사기 위해 네 번, 다섯 번 찾아가는 것은 물론 지방에 내려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되는 이름은 ‘원내대표’. 단식 중 시민에게 얻어맞거나, 협상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가 생기기도 하는 자리다.

원내대표는 국회 안에서 당을 대표한다. 상임위원회에 의원을 배정하는 등 국회 운영을 총괄한다. 과거에는 원내총무로 불렸는데, 2003년 민주당에서 분당한 열린우리당이 정치개혁을 내세우며 명칭을 원내대표로 바꿨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시작으로 당시 한나라당도 원내대표라는 명칭을 사용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상대 당 원내대표와 매일같이 싸우고, 당내에서도 ‘욕받이’를 각오해야 하는 이 자리를 의원들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도전한다. 나경원 의원은 삼수 끝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타이틀을 얻었고, 홍영표 의원도 재수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됐다.

나 의원은 오전에 4명, 오후에 4명, 저녁에 2명의 의원을 직접 만나 지지를 호소하는 ‘442 선거전략’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 원내대표가 여러 번 고배를 마신 뒤 당선되자 적어도 두 번은 도전해야 의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5월 8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후보로 나선 노웅래, 이인영, 김태년(왼쪽부터) 의원. 모두 3선의 당내 중진이다.

다음 달 8일 열리는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의원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모두 3선 의원으로, 당내 중진으로 꼽힌다. 도전 횟수로만 따지면 노웅래 의원이 가장 ‘베테랑’이다. 2016년, 2018년 원내대표 선거에 이어 올해가 세 번째다. 이인영 의원은 2015년, 2018년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원내대표에 도전하게 된 케이스다. 김태년 의원은 여러 차례 원내대표 후보군으로 언급됐으나 출마를 선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128명의 마음을 사는 일

이 의원은 ‘돌진형’ 선거운동을 택했다. 지역에 머무는 의원을 만나기 위해 부산까지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러고는 밤늦게까지 ‘노무현 정신’을 이야기하며 한 표를 호소했다고 한다. 다른 의원들에게는 아침밥을 챙겨주려고 죽 배달까지 했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딱딱하던 이 의원이 변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반면 김 의원은 무작정 의원들을 찾아가기보다 미리 약속을 잡고 정해진 시간에 만나는 것을 선호한다. 자신이 유권자일 때 다짜고짜 의원실에 찾아오는 후보들이 불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노 의원은 여성 의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화이트데이 때 마카롱과 장미꽃을 선물했다. 의원들의 생일을 챙기는 건 기본이다. 민주당 의원 128명 중 여성은 21명인데, 계파색이 짙거나 특정 의원을 지지하는 경우가 드물어 유동적인 유권자로 분류된다.

과거에도 원내대표 선거전은 치열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야당 원내대표’를 꿈꿨다는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2009년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 당시 해외 출장을 다녀온 의원들을 마중하러 새벽부터 공항을 찾았다. 공항 마중이 반응이 좋자 경쟁자였던 김부겸 의원도 공항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로 당선된 이종걸 의원은 후보자 토론회 때 “이번에 떨어지면 자살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세 번째 원내대표 경선 도전의 절박함을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이 의원은 당시 “많은 의원을 뵙고 다녔다. 5200㎞를 달렸다. 의원님들과 약속이 안 되기도 해서 차에서 자다가 새벽에 만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화이트데이 때 여성 의원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한 것도 이 의원이 원조다.

원내대표가 뭐기에

왜 의원들은 재수, 삼수까지 하며 원내대표를 하고 싶어하는 걸까. 재수 끝에 원내대표가 된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임기 말이 되자 “이 힘든 걸 왜 하려고 하느냐”고 푸념했다.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과 스트레스가 뒤따르는 자리라는 뜻이다.

의원들이 원내대표를 노리는 가장 큰 이유는 당선이 되는 순간 정치권의 ‘실세’로 부상한다는 점 때문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26일 “원내대표는 권한과 위상이 당 대표와 맞먹고, 여당일 때는 당 대표 이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수시로 진행되는 당정청 협의로 법안과 정책, 예산이 결정되고, 원내대표를 통해 정부와 청와대의 국정과제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차기 행보에 유리한 경력이 된다는 점도 원내대표를 욕심내는 이유다. 원내대표직을 성공리에 마친 의원은 당 대표나 광역단체장 도전 기회가 생기기도 하고, 대선 주자로 거론되기도 한다. 현역 원내대표는 총선을 치를 때도 유리하다.

원내대표 선거는 다른 어떤 선거들보다 ‘표 계산’이 어렵다고 한다. 후보들이 자체 분석한 ‘확실한 내 표’를 합치면 전체 의석수의 2배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의원들은 다음 총선 생각을 할 것이다. 누가 돼야 내가 공천을 받는 데 유리한가, 또 누가 돼야 우리 당 선거가 잘 될까 하는 고민이 그것”이라며 “그 다음이 개인적 인연이나 빚진 것들인데, 의원마다 지역구 예산, 정책을 챙겨준 인연을 따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의원은 “의원들을 상대로 하는 선거는 정말 알 수가 없다. 최고의 선거 전문가들이 모여 치르는 선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번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를 두고 ‘2강 1중’ ‘1강 1중 1약’ ‘1강 2중’ 등 곳곳에서 여러 예상이 나오지만, 여전히 결과는 뿌연 안갯속이다. 결선투표가 치러져 3위 후보가 얻은 표가 2위 후보에게 쏠릴 경우 막판 뒤집기도 가능하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