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세느강 안의 기다란 섬 그랑드 자트는 1884년 당시 파리 사람들의 휴양처였다. 조르주 쇠라는 이 섬에서 일요일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의 일상을 가로 3m, 세로 2m의 거대한 캔버스에 그렸다. 바로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다.
평온함을 극대화한 건 찬란한 햇빛이다. 쇠라는 이 빛을 ‘점’으로 찍어 표현했다.
21세기 미국의 작가 크리스 조던은 그 점을 이렇게 활용했다. 40만개의 플라스틱 패트병에 사용하는 동그란 플라스틱 뚜껑. 빼곡히 자리한 뚜껑을 확인하는 순간 그랑드 자트 섬은 더 이상 평온해 보이지 않는다. 작품 옆에 붙은 설명은 불편함을 가중시킨다. 40만개라는 숫자는 미국에서 1분마다 소비되는 페트병의 수라는 설명 말이다.
이처럼 그의 작품들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던 찰리 채플린의 명언을 비틀어 놓은 느낌이다. 아름답거나 때로는 평화로워 보이는 그의 작품들은 가까이 들여다보면 폐플라스틱이나 비닐봉투, 폐라이터 등의 실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건 현실이었다. 플라스틱 빨대가 콧구멍에 꽂힌 거북이, 뱃속에 음식물 대신 폐플라스틱을 가득 담은 고래와 알바트로스는 원인을 모른 채 죽어갔다.
그리고 폐플라스틱은 인간에게도 위협이 되기 시작했다.
미드웨이 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나
크리스 조던은 전시공간에서 자신의 대표작 ‘알바트로스’를 전시했다. 환경오염이 빚은 비극과 슬픔의 민낯을 마주하기 위해 작가는 태평양 미드웨이섬에 8년간 머물렀다. 그리고 가장 높이, 멀리, 오래 나는 새로 알려진 알바트로스의 출생부터 죽음까지를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다.
알바트로스는 인간이 바다에 버린 쓰레기를 먹이로 착각해 먹었다. 배에는 플라스틱이 가득 찼고 고통 속에 서서히 죽음을 맞이했다. 부패가 진행돼 흙과 엉킨 알바트로스의 주검 속에서도 유일하게 형태를 유지한 건 플라스틱 조각들이다.
사진의 연장선인 다큐멘터리 영화 ‘알바트로스의 꿈’에서는 이들의 비극을 좀 더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어미 알바트로스는 바다에 떠 있는 플라스틱을 먹이로 알고 부리로 물어 새끼에게 날아가 입에 넣어준다.
크리스 조던은 “사진과 영상을 찍을 때 조작하거나 플라스틱 뚜껑 위치를 바꾸지 않았다”면서 “이미지 편집도 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알바트로스의 일생을 담은 것 같지만 사실 우리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 플라스틱과 전쟁을 시작하다
크리스 조던의 말대로 폐플라스틱은 알바트로스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위협이 되고 있다. 플라스틱을 만든 게 인간이니 위험을 자초한 일이지만 자책만 하기엔 시간이 없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내놓은 ‘주요국의 플라스틱 규제 동향과 혁신 비즈니스 모델 연구’를 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지난 10년간 42%나 증가했다. 2017년 3억4800만t을 기록했다. 자연에 분해되지 않는 특성 탓에 플라스틱은 고스란히 폐기물로 남았다.
2016년 기준 발생한 플라스틱 폐기물은 약 2억4200만t이다. 이 중 79%는 매립됐거나 환경에 방치됐고 12%만이 소각됐다.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은 9%에 불과했다.
특히 폐플라스틱의 대부분은 바다로 흘러 들어갔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플라스틱에 의한 세계 해양 생태계의 경제적 손실은 매년 최소 130억달러에 달한다.
이에 2015년 이후 비닐봉투(Plastic Bags)와 스티로폼 등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국가 차원의 정책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18년 현재 87개국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제한하고 있고 사용금지 조치를 취한 국가도 64개나 된다. 지난해 6월 유엔은 포장재로 사용되는 일회용 비닐봉투와 플라스틱 음식 용기에 대해 금지하거나 과세를 강화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플라스틱이 지구환경을 위협하는 주된 쓰레기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지난해 중국이 폐플라스틱 수입을 금지한 뒤부터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부는 지난해 5월 ‘재활용 폐기물 관리 종합대책’을 내놨다. 2022년까지 일회용컵과 비닐봉투 사용량을 35% 줄이고 2030년까지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을 50% 감축하자는 게 주요 내용이다.
지난해 8월부터 커피전문점 등 매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컵 사용, 지난 1월부터 대형마트와 165㎡ 이상 슈퍼마켓에서는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을 금지했다.
보이지 않는 위험, 미세플라스틱
플라스틱 중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은 보이지 않아 더 위험하다. 지난 2016년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미세 플라스틱의 유해성을 알리는 ‘우리가 먹는 해산물 속 플라스틱’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해 한국 정부에 생활용품 속 미세 플라스틱에 대한 법적 규제를 요구했다.
이 보고서는 사람이 섭취하는 다양한 해산물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고 그 영향이 해양 생태계 전반뿐 아니라 인간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에릭센 르브레튼 등이 2014년 출간한 ‘전 세계 바다를 오염시키는 플라스틱 오염’ 논문은 바다를 떠다니는 플라스틱 조각이 약 5조2500억개나 된다고 봤다. 무게는 무려 26만8940t이다.
플라스틱 조각들 중 미세 플라스틱은 지름이 5㎜ 이하인 플라스틱 조각을 통칭한다. 화장품이나 치약에 넣기 위해 애초부터 작게 만든 1차 미세 플라스틱, 바람이나 파도 등의 자연작용으로 마모되거나 쪼개진 2차 미세 플라스틱이 있다.
너무 작아 계량화하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학술논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2016년 러셔 맥휴 등이 공동 저술한 ‘북대서양 중심해수층 어류와 미세 플라스틱의 연관성’ 논문은 총 761마리의 중심해수층 어류를 표본 추출해 분석한 결과 북대서양 어류의 11%에서 플라스틱 조각이 발견됐다고 했다.
럼멜 로더 등이 2016년 출간한 ‘북해와 발틱해의 심해어와 회유어류의 플라스틱 섭취’ 논문에서는 북해와 발트해에서 포획한 290마리 어류를 분석한 결과 5.5%의 내장에서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검출된 플라스틱 중 40%는 폴리에틸렌이었고 폴리아미드와 폴리프로필렌도 각각 22%, 13%나 됐다.
무엇보다 미세 플라스틱과 관련해 주목할 점은 포식자가 미세 플라스틱에 오염된 먹이를 섭취할 경우 그 플라스틱이 먹이사슬 내에서 전이되거나 축적될 수 있다는 점이다.
파렐 P. 연구팀은 2013년 미세 플라스틱에 오염된 홍합을 게에게 먹이고 21일간 관찰했다. 그 결과 게의 체내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나왔다. 연구팀은 이 실험의 결과가 미세 플라스틱이 먹이사슬을 통해 상위 포식자에게 전이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그린피스 측은 “인간이 소비하는 해양생물들도 미세 플라스틱에 광범위하게 오염돼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인간도 어느 정도 미세 플라스틱에 노출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