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난민 심사 받을 기회·자격 축소… 유관기관 “헌법·국제협약 위배”

입력 2019-04-23 19:18 수정 2019-04-23 21:36
예멘 난민들이 지난해 6월 제주도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열린 취업설명회를 기다리고 있다. 뉴시스

법무부가 제주도 예멘 난민사태를 계기로 준비 중인 난민법·출입국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 등 관계기관이 강력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관은 개정안이 헌법이나 현행 사법제도는 물론 국제협약까지 위반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의견서를 법무부에 공식적으로 전달했다. 정부가 난민 반대여론에 편승해 난민을 막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국민일보는 23일 법무부의 난민법·출입국관리법 개정안 초안과 이에 대한 관계기관 의견서를 확보했다. 의견서에는 개정안이 난민심사 재심사 기회를 부당하게 제한하고 강제송환 여지를 늘리는 등 국제 난민협약은 물론 헌법까지 위배했다는 지적이 담겼다.

법무부가 마련한 개정안은 난민심사의 기회를 축소하는 게 골자다. 이를 위해 ‘부적격결정’ 제도를 신설해 정식 난민심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대폭 축소했다. 행정부처인 법무부가 사실상 사전심사를 할 수 있도록 칼자루를 쥐여주는 제도다. 이외에도 법무부가 ‘명백히 이유 없는 난민신청’을 한 난민신청자를 판단해 난민 불인정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 항소심을 변론기일 없이 서면심리만으로 끝낼 수 있도록 했다. 또 난민심사에서 불인정 결정이 났을 시 제소기간을 현행 90일에서 30일로 축소했다.


인권위 등은 이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개정안 초안이 헌법을 위배한다는 지적이다. 인권위는 “행정소송법상 제소기간인 90일을 30일로 줄인 것은 헌법 제27조의 ‘법관에 의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변호사협회도 “행정심판은 서면심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재판 단계에서는 민사소송법에 따라 구술주의가 원칙”이라며 재판을 서면심리로 끝내선 안 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변협은 이 조항을 “오로지 변론기일의 지정으로 인한 체류기간 연장을 막겠다는 목적으로 법관에 의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와 3심제도 자체를 수정한 것”이라면서 “난민의 공정한 사법심사 기회 보장을 박탈할 근거가 될지 심히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난민심사 출석통지 책임을 난민신청자에게 떠넘겼다는 지적도 나왔다. 개정안은 난민신청자가 심사에 2회 이상 출석하지 않거나 면접에 응하지 않는다면 난민신청을 철회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과거 난민신청자 출석 요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사건(국민일보 2018년 7월 23일자 6면 참조)이 발생하는 등 이미 통보방식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지적된 바 있다. 인권위는 “출석요구 방법이 송달에 준하는 형태로 명확하게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본인 전달 여부확인 없이 2회 이상 출석하지 아니하였다는 이유로 철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개정안이 난민심사 통역을 외주화할 수 있도록 한 데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변협은 “조력단체(통역업체)가 난민인정 절차에서 담당하는 위치가 애매해 난민신청자에게 부당한 결과가 나올 우려가 있다”고 봤다. 인권위 역시 “(통역) 내용의 정확성을 행정청이 관리·감독해 담보하는 게 전제되어야 한다”고 단서를 달았다. 이미 난민심사 통역 과정은 악의적 허위통역 사례(국민일보 2018년 7월 9일자 6면 참조)가 확인돼 제도상 허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인권위는 의견서 총론에서 “새로 생기는 심사제한 규정, 허위서류 제출 처벌 규정이 난민법의 애초 입법취지에 어긋나고 난민신청자가 제대로 된 심사를 받지 못하고 강제 출국될 수 있는 등 국제 난민협약의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변협도 “개정안은 취약한 난민신청자에 대한 절차적 권리를 근본적으로 제약하는 것”이라며 “난민법의 입법취지 자체가 무시되거나 국제법인 난민협약에 반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원도 개정안에 부정적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관계자는 “난민심사 절차를 줄이겠다는 내용의 법무부 개정안에 대해 ‘3심 제도를 보장해야 한다’는 법원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법원 관계자는 “지난달 25일 무렵 의견 회신을 했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의도적으로 의견 수렴 절차를 허술히 진행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2013년 난민법을 제정할 때와 달리 관련 국제기구나 난민인권단체에 자문을 구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난민협약 관련 국제기구인 유엔난민기구(UNHCR)의 신혜인 공보관은 “법무부는 2013년 난민법과 그 시행령을 제정하면서 UNHCR, 난민인권단체들과 밀접하게 의견을 나눴다”면서 “이번 개정안과 관련해 법무부에서 공식적으로 연락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한 난민인권단체 관계자는 “법무부가 개정안 통과에 급급해 형식적으로 최소한의 절차만 거치려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법무부는 예멘 난민 사태 직후인 지난해 6월부터 난민법 개정 계획을 밝히고 이를 추진해왔다. 난민 수용 반대여론이 빗발쳤고, 기존 제도가 운용되는 데도 인권침해가 벌어지고 있다는 국제사회의 지적도 나왔던 터라 법 개정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법무부는 지난달 입법예고를 마치고 오는 6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관계기관 반대로 일정이 늦어져 개정안 제출은 9월 정기국회 이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관계자는 “인권위 등의 의견을 반영해 개정안 수정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향후 불필요한 논쟁을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꼼꼼하게 입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일정이 다소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