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회사에 출근했더니 ‘내 자리’가 사라져 있었다. 회사는 흑자였지만 ‘경영상 위기’라며 직원을 대량 해고했다. 억울해서 ‘해고 철회’ 피켓을 들었다. 정당한 싸움이라 금방 끝날 줄 알았다. 이인근(사진) 금속노조 콜텍 지회장의 국내 최장기(12년) 농성은 그렇게 시작됐다. 2007년 초등학생, 중학생이던 아들과 딸은 이제 20대 중반이 됐다. 기나긴 투쟁 속에 5년 전엔 아내와 헤어졌다.
이 지회장은 23일 서울 강서구 콜텍 본사 앞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해고는 내 가정과 꿈을 파괴했다”며 투쟁을 마무리하는 소회를 밝혔다. 그는 “아내는 생계를 위해 투잡, 쓰리잡을 뛰었고 아이들에겐 아빠 노릇을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지회장은 “나를 해고한 박영호 콜텍 사장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더 밉다”고 했다. 양 대법원장 시절인 2012년 대법원은 부당해고를 인정한 항소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미래에 닥칠지도 모를’ 경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양승태 대법원’이 콜텍 재판 등 주요 노동 관련 재판을 두고 ‘박근혜 청와대’와 거래했다는 사실이 지난해 드러났다. 그는 “약자가 기댈 곳은 결국 법인데 말도 안 되는 판결을 보면서 이 사회의 정의가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다”며 “법원만 제 역할을 했어도 투쟁은 일찍 끝났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포기하지 않은 건 ‘회사가 버티면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노동자가 포기하게 돼 있다는 오해’를 깨고 싶어서다. 이 지회장은 “부당해고가 만연한 이유는 노동자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결국 투쟁을 멈추기 때문”이라며 “노동자도 끝까지 싸울 수 있다는 걸 누군가는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내 자식들도 노동자가 될 건데 조금이라도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하길 바랐다”고 덧붙였다.
이날 콜텍 노사는 이 지회장 포함 농성자 3명이 다음달 2일부터 한 달 간 명예 복직되는 내용 등이 담긴 합의안에 서명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