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기술이 학문의 기초… 인문·이공계도 소통 가능”

입력 2019-04-23 20:32
서울대 교수 23명이 참여한 책 ‘공존과 지속’ 출간을 주도한 교수들. 왼쪽부터 장대익 권혁주 이정동 김기현 교수. 이들은 후속 프로젝트를 묻는 질문에 “이번에 너무 고생을 해서 아직…”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민음사 제공

필자들은 이런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기술 혁신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학계는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내린 결론은 프로젝트를 가동해보자는 거였다. 책에 적힌 프로젝트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문득 기술 혁신이 우리 사회와 만나는 접점에서 다양한 논쟁점이 생겨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자체도 큰 기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과 관점의 차이가 드러나는 경계선을 묘사해 내는 토의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었다. 빛이 비치면 영롱하게 그 실체를 드러내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이미지 같은 것이랄까.”

눈길을 끄는 건 프로젝트에 참여한 학자들의 면면이다. 각기 다른 학문에 몸담은 서울대 이공대와 인문사회대 교수 23명은 유전기술·인공지능·에너지·교육 4개 분과로 각각 나뉘어 2015년부터 틈틈이 토론을 벌였다. 거듭 대화를 나눈 뒤 토론을 통해 가다듬은 생각을 글로 옮겼다. 이런 과정을 거쳐 출간된 책이 바로 ‘공존과 지속’(민음사·표지)이다.

22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각 분과 좌장 역할을 맡은 이정동(에너지) 권혁주(교육) 김기현(인공지능) 장대익(유전기술) 교수를 만났다. 이들은 “이공대와 인문사회대 교수 사이에 놓인, 기술을 바라보는 시선의 간극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술과 인간의 공존, 그리고 이런 공존의 지속은 한국사회가 대비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며 “서울대 교수들로서 이 문제를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입을 모았다.

“2년 넘게 토론을 했고, 원고를 추가로 받아서 정리하는 데만 2년이 더 걸렸어요. 서울대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지만, 이공대와 인문사회대 교수들이 대면할 기회는 없었어요. 기술을 바라보는 생각도 다르고요. 하지만 서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이 교수)

“인문사회대 학자들은 기술을 모르니 허황된 얘기를 하기 쉽고, 이공대 교수는 기술이 끼치는 사회적 영향력을 모를 때가 많죠. 이런 부분을 서로 배우는 과정이었어요. 이번에 저희가 출간한 책은 담론의 장을 만드는 데 있어 하나의 샘플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김 교수)


책에는 첨예한 이슈를 놓고 벌어지는 일급 학자들의 불꽃 튀는 설전이 담겨 있다. 책에 담긴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눈 위에 찍힌 어지러운 발자국들처럼 이리저리 주제가 옮겨 다니는 것”도 확인하게 된다. 그렇다고 교수들이 토론을 통해 뾰족한 해법을 도출한 건 아니다. 이 교수는 “우리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해법이 아니라 논쟁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첨예한 이슈마다 포개지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토론을 진행하면서 세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한다. ①인간과 기술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화한다. ②사회제도의 변화가 기술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제도 지체의 현상은 흔히 나타난다. ③기술 자체만큼이나 인간의 존재 양식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해야 한다.

교수들은 저마다 이번 프로젝트에 자부심을 드러냈다. 장 교수는 “다른 대학을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카이스트나 포항공대였다면 불가능했을 작업”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서울대가 인문사회대와 이공대가 모두 있는 종합대학이어서 이런 프로젝트가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 ‘공존과 지속’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죠. 이런 작업을 서울대에서 드디어 해봤고, 교수들이 이 과정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컸어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