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등장한 페이스북은 미국판 ‘싸이월드’였다. 인터넷 사용자들의 소소한 일상을 지인들과 공유하는 개인 홈페이지를 웹사이트가 아닌 웹페이지로 개설해주는 서비스. 사진과 동영상 등 멀티미디어로 친구와 친지에게 소식을 전하는 방식도 같았다.
하지만 싸이월드가 한국어 서비스만으로 국내 사용자들에게만 인기를 얻었다면, 페이스북은 전 세계 네티즌들이 열광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였다. 이메일과 모바일폰 번호를 통해 자동으로 지인을 찾아주고 학연·지연 등으로 인맥을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후 인스타그램 등 다른 SNS가 속속 등장했고, 개인 웹페이지라는 SNS의 개념은 그곳에만 머물지 않았다. 한 명의 개인이 수많은 인맥과 연결되고 이를 통해 자연스레 하나의 소식과 사진, 동영상이 기하급수적으로 ‘공유’되는 현상에 기업과 전문가들이 주목했기 때문이다. 일기에 가까운 SNS가 감성을 팔고 광고와 홍보의 장이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SNS, “이제는 감성을 판다”
P씨(40·여)는 2000년 중반 급격히 성장한 인터넷 쇼핑몰 1세대다. 타고난 패션감각으로 ‘동대문 패션’을 인터넷으로 선보여 중국 일본 등지의 해외 주문까지 쇄도할 정도로 성공했다. 매년 1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다 2011년 매출액 32억원으로 정점을 찍기도 했다. “그땐 진짜 잘나갔죠. 홈페이지에 패션제품 광고사진을 잘 올려놓고, 홈페이지를 우아하게 꾸며놓기만 하면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주문량을 감당할 수 없어 택배만 도맡는 직원을 20명 이상 쓰기도 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2013년 이후 매출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도무지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똑같은 방식의 홍보와 광고, 제품 품질력이었지만 팔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때 컨설팅 전문가를 찾아갔어요. 그랬더니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이제 인터넷 쇼핑몰도 SNS 시대라고요.”
무슨 말인지 몰랐던 P씨에게 이 전문가는 “다른 쇼핑몰들은 대부분 쇼핑몰 모델의 개인 SNS를 통해 상품을 홍보하는데 당신만 전혀 안 하고 있다. 빨리 SNS 관리팀을 만들어라”고 했다. 일에 지쳐 있던 P씨는 ‘SNS라고 별것 있겠어’ 하는 마음에 이 말을 무시해버렸다. 그런데 매출은 해가 갈수록 급속히, 아니 초고속으로 감소했고, 급기야 그는 지난해 9월 12년째 운영하던 쇼핑몰을 접었다. 1년 매출액이 1억원을 밑돌면서 사무실 운영비도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제가 바뀐 인터넷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겁니다. 쇼핑몰을 검색해 패션을 사는 게 아니라 요즘 세대는 SNS를 보고 쇼핑을 하는데, SNS를 전혀 활용하지 않았어요.”
P씨의 라이벌 쇼핑몰 운영자 K씨(42·여)는 반대로 더 성공했다고 한다. 자신의 일상과 여행 스케치 등을 통해 자연스레 패션을 홍보하자 고객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인터넷 쇼핑은 이제 감성을 팔아야 해요. 의상실 쇼룸처럼 패션을 홍보하는 건 광고효과가 제로에 가깝습니다. 일상생활에 자연스레 입고 나간 옷, 패션 아이템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시대가 됐어요.”
SNS를 통한 광고효과는 TV 광고나 홈페이지 광고보다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한다. 한 명의 네티즌의 마음에 든 사진 한 장이 SNS 인맥을 통해 수천, 수만 명에게 퍼날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P씨는 “이미지에 민감한 패션 제품일수록 SNS 광고와 홍보가 성공을 좌우한다”고 단언했다. 20, 30대 젊은 네티즌일수록 같은 기능과 내구성, 품질을 가진 제품이라면 더 패셔너블(fashionable)한 상품을 찾는다는 것이다. “반지 하나를 끼더라도 자기 손가락에 어울리는 제품, 같은 물건이라도 좀 더 싼 제품, 동대문 패션이라도 명품 옷처럼 보이는 걸 찾는거죠. 그게 자기 감성에 맞는지를 알려면 진열장에 나열된 옷을 보는 게 아니라 타인의 일상에 자연스레 걸쳐진 모습을 봐야 알 수 있으니 SNS를 통해 타인의 일상 스토리를 찾게 되는 겁니다.”
개인 웹페이지에서 마케팅 중심으로!
B씨는 여러 기업에 SNS 마케팅을 컨설팅하는 전문가다. 상품만 나열하는 딱딱한 홍보를 개인의 일상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드라마틱하게 광고하는 방법, SNS의 구성과 이미지 관리 등을 기업 홍보·광고 담당자들에게 교육하는 게 그의 일이다. “사진의 각도부터 배경음악 선택, 장소와 이미지 설정까지 세밀한 부분들이 해당 상품과 기업의 광고 성공을 좌우합니다. 아직 우리 기업들은 이런 부분에서 매우 세련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B씨가 성공시킨 소규모 사업자들은 수백명에 이른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특정 기업과 특정 제품을 선전하는 기존 광고의 개념은 SNS세대에게 낡은 것이 돼 버린 지 오래다. 하나의 제품이라도 SNS와 각종 인터넷 매체를 통해 티저(teaser·자극제 광고)를 띄워 신비감을 조성하고 공개된 제품을 사용자의 일상생활과 연결해 자연스레 잠재적 사이버 소비자들을 유인하는 방식의 간접광고가 SNS세대에겐 더 친숙해졌다는 얘기다.
기업 사무교육 전문가인 S씨의 일상은 거의 하루종일 자신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관리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그동안 자신이 해온 사무교육 콘텐츠를 멀티미디어 동영상과 사진으로 보기 좋게 업로드하고 달린 댓글과 ‘좋아요’를 누른 사용자들에게 일일이 피드백하고 소통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기업 사무교육이라고 해서 딱딱한 문서나 ‘꼰대’식 훈계가 아니에요. 샐러리맨들의 딱딱한 업무 고정관념을 깨고 성공을 위한 감성을 주입하려면 항상 시각과 청각의 중요성을 일깨워야 합니다. 그러니 제 SNS 콘텐츠들은 전부 멀티미디어입니다.”
그에게 SNS 관리는 최고의 영업이다. SNS 친구들을 통해 연결된 인맥으로 새로운 기업이 그를 찾고 사무교육을 맡기기 때문이다. “제 SNS에서 제가 행한 사무교육이 불러일으킨 기업 내 효과를 확인하고 새로운 기업들이 저를 찾게 되는거죠. 제 교육이 낳은 효과야 기업들을 찾아가 확인하면 되겠지만, 그 시발점 자체가 SNS인 겁니다.”
S씨처럼 SNS를 영업의 장으로 이용하는 전문가들은 더욱더 늘고 있다. 딱딱한 전문 분야일수록 SNS가 더 위력을 발휘한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전까지 전혀 필요 없는 분야라 여겨졌던 기업들이 새로운 전문 분야를 특정 전문가의 SNS를 보고서야 자각하게 되고, 새로운 수요층을 형성해가기 때문이다.
“전통적 사고방식을 빨리 버려야 합니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접근법, 이를 실현시킬 의지와 현실적 수단이 있다면 SNS를 통해 스스로를 홍보해 보십시오. 생각지도 못한 성공이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선 각 분야 전문가들을 SNS를 통해 모집하고 관리하는 기업과 기관도 급증하는 추세다. 특정인의 프로필과 전문 분야 이력을 관리하고 검증해 분류한 다음 이를 찾는 기업·기관에 소개하는 것이다. 사이버 헤드헌터 기업이 등장할 날도 멀지 않은 셈이다.
감성과 아이디어가 팔리는 시대, 그저 ‘나 혼자’만의 놀이이거나 일기에 불과하다고 여겨졌던 일상의 소소한 스토리가 타인의 동경이 되고, 구매하고 싶은 꿈과 패션이 되는 세상이 된 셈이다.
“인터넷이 모바일로 발전하고, 모바일은 또 사물인터넷으로까지 확대되는 세상입니다. 연결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만이 아니라 이익과 부가 되는 시대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S씨의 말에는 20년 가까이 ‘사이버 세상’을 통해 일해온 베테랑의 품격이 묻어 있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