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독설 공방전… ‘정치’는 어디갔나

입력 2019-04-23 04:02

여야 정치인들의 거친 입이 한국 정치를 잠식해가고 있다. 자유한국당 전현직 의원들의 세월호 참사 관련 부적절한 발언이 논란이 된 데 이어 황교안 대표가 주말 장외집회에서 또다시 문재인 대통령을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 대변인’이라고 지칭한 것을 두고 여야 신경전이 격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도 한국당을 향해 ‘막말만 일삼는 극우 정당’ ‘국민에게 총 쏜 정권의 후신’ 등 공격적인 발언만 쏟아내며 대치 구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여야가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치는 내팽개친 채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거친 말만 주고받으며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국당과 민주당 지도부는 22일 서로를 향해 ‘독재’ ‘극우’란 표현을 써가며 맹렬하게 대치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제1야당 대표 발언이 도를 넘었다”면서 “정치를 처음 시작한 분이 그렇게 입문해서 막판에 무엇으로 끝내려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황 대표가 주말 광화문 집회에서 문 대통령을 향해 ‘김정은 대변인 역할만 한다’고 비판한 것을 언급한 것이다. 이 대표는 “다시 한번 그런 발언을 하면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한국당의 5·18광주민주화운동 폄훼 의원들에 대한 솜방망이 징계를 언급하며 “증오와 혐오를 먹고 사는 극우 정치를 하겠다고 대놓고 선언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반면 같은 시간 황 대표는 “지금 이 정권은 정책 방향을 바로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온갖 독재적인 수단을 동원해 정권을 유지할 궁리만 하고 있다”며 “독재 정치를 계속한다면 더 많은 국민이 청와대 앞으로 진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당은 앞서 자당을 ‘4·19혁명 때 국민에게 총을 쏜 정권의 후신’이라고 비판했던 박광온 민주당 최고위원을 “근거 없는 거짓 망언을 자행했다”며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소했다.

여야가 서로를 향해 가시 돋친 말만 퍼붓는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상대편을 공격하고 자기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프레임 전쟁’ 성격이 강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여야가 총선을 앞두고 서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짜기 위해 여권은 한국당을 향해 ‘친일·극우 프레임’을, 한국당은 여권을 향해 ‘종북 프레임’을 덧씌우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여야 대치 구도가 격화되고 이로 인해 서로를 향한 독설이 다시 터져나오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협치는 요원해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당이 이날 자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의 선거제 패스트트랙 처리 잠정 합의에 강력 반발하면서 대치 구도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로를 향한 ‘말폭탄’이 민주당과 한국당 거대 양당의 기득권 유지 수단이라는 분석도 제기됐다. 박상병 인하대 초빙교수는 “말폭탄 경쟁은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라며 “민주당은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 강행에 따른 비판 여론, 한국당은 5·18 폄훼 의원들 처분을 둘러싼 비판 여론 등 위기를 타개하고 각자의 지지층을 결집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도 “최근 제3지대의 존재감이 미미해지면서 거대 양당이 눈치 보지 않고 서로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과거와 달리 현재 여야 대치 구도는 출구전략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