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그동안 한국 등 8개국에 한해 인정해줬던 이란산(産) 원유 수입 금지 예외 조치를 더 연장하지 않기로 하면서 석유화학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이란산 콘덴세이트(초경질유)를 원료로 석유화학제품의 기초 연료인 나프타를 생산하는 국내 업계의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커지면 국제유가가 치솟고 국내 휘발유 가격도 동반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과 중국 일본 인도 이탈리아 터키 그리스 대만 8개국에 한시적으로 부여했던 이란 제재 예외 조치(SRE)를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22일(현지시간) 백악관이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밝혔다.
이에 따라 5월 3일 0시(미국 동부시간)를 기해 한국 등의 이란산 원유 수입이 전면 금지된다.
한국석유공사와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9∼12월만 해도 이란산 원유 수입은 아예 없었다. 올해 들어 수입이 재개되고도 1월에는 이란산 비중이 2.1%에 그쳤다. 가장 최근인 2월에는 8.6%까지 비중이 올라가기는 했다. 이에 대해 국내 업계는 지난해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을 축소하고 수입국 다변화에 노력했기 때문에 원유 수급 자체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초경질유다. 이란산 초경질유는 나프타 함량이 80% 수준으로 다른 유종에 비해 높아 대부분 업체가 의존해 왔다. 이란산 초경질유의 경우 가격 경쟁력도 높아 전체 초경질유 도입량 중 5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란산 초경질유는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배럴당 적게는 2달러, 많게는 6달러 정도 싸다.
국내에서는 현대오일뱅크, SK인천석유화학, SK에너지, 한화토탈 등 4개사가 이란산 원유를 수입한다. 이란산 초경질유를 수입하는 회사는 SK인천석유화학, 현대케미칼, 한화토탈 3곳이다. 업계 관계자는 “초경질유 도입 지역을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나이지리아 등으로 다변화했지만 이란에서 들여오는 물량이 워낙 많다 보니 충격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아울러 원유 공급이 줄어 유가와 석유제품 가격이 오르고 소비와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다만 제재로 이란 원유 수출이 제한됐던 2012년만큼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전망이다. 2011년 12월 미국 의회에서 대이란 제재법인 국방수권법이 통과될 때 국내 원유 수입물량 가운데 이란산 비중은 10%에 달해 파장이 컸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해 11월 유예 조치를 받은 뒤 만약의 경우를 가정해 수입국 다변화를 유도해 왔다.
유성열 조성은 기자, 세종=신준섭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