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승혜] 그래도 촬영할 것인가

입력 2019-04-23 04:05

최근의 정준영 사태를 보며, 몇 년 전 필자가 공판검사로서 관여한 불법촬영 사건의 피고인인 남자 대학생 A가 생각났다. 명문대생, 유복한 가정, 전도유망한 미래…. 순탄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이던 A의 인생에 ‘불법촬영 중독’이라는 심각한 독초가 나타났다. A는 길가는 불특정 다수 여성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스마트폰으로 여러 차례 촬영했다. 검사는 A가 초범인 학생인 점, 깊이 반성하는 점, 일부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참작해 기소유예 선처를 해주었다. 그러나 A는 또다시 여성들을 촬영했다. 두 번째 사건에서는 법원이 선고유예 선처를 해주었다. 그러나 A는 또다시 여성들을 촬영했고 결국 세 번째 사건에서 법원은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 재판이 진행될 무렵만 해도 불법촬영에 대한 심각성이 널리 인지되지 못하고 처벌 수위 역시 그다지 높지 않았다. 그래서 A가 여러 번 선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법무부 장관은 2018년 10월 검찰에 ‘불법 촬영·유포 범죄에 대하여 법정 최고형 구형’을 지시했다. 검찰은 피해자 식별이 가능한 경우 등 일정한 구속요소를 설정, 그중 하나만 해당돼도 구속을 원칙으로 하도록 기준을 강화했다. 2018년 12월에는 불법촬영 관련 법규정이 개정돼 기존 처벌규정의 흠결로 처벌할 수 없었던 사안도 처벌할 수 있게 되었고, 법정형도 높아졌다. 예를 들어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여러 번 유포한 사람은 최장 10년6개월 동안 교도소에 있을 각오를 해야 한다.

법정형 자체도 무겁지만 불법촬영을 저지른 자는 10년 이상, 30년 이하의 장기간 매년 경찰서에 전신 사진을 제출하고, 주소·차량 번호·직장 정보 등 신상정보를 등록해야 한다. 또한 10년 이내의 기간 동안 학교, 학원, 체육시설, 대중문화예술기획업소, 의료기관(의료인인 경우) 등에 취업이 제한된다. 그리고 불법촬영 영상물이 유포돼 국가가 피해자 대신 비용을 들여 영상물을 삭제한 경우 그 삭제 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인터넷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유포된 경우 피해자의 고통에 비례하여 유포자가 책임져야 할 삭제 비용도 크게 늘어나는 것이다. 짧은 시간 촬영하고 단톡방에 올리거나 카페 게시판 등에 올린 대가 역시 엄청나다. 어떤가. 그래도 몰래 촬영하거나 퍼뜨려서 자기 스스로 미래를 망칠 것인가.

이승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