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전역에서 수년간 쌓여 있던 각종 민원이 최근들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부산시청 입구와 주변 곳곳에선 시위와 농성이 매일 이어지고 있다. 이해관계인들이 민원을 제기하는 건 어느 때나 있는 일이지만 시청 주위가 부쩍 부산해진 건 “시위하면 해결된다”는 의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민원행정을 처리하지 않은 결과”라며 꼬집는 시민들이 많다.
부산시는 지난 12일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인근 노상에 있던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강제 철거했다가 닷새 만에 반환했다. 지난 17일 오거돈 부산시장은 박인영 시의회의장, 김재하 민노총 부산본부장 등과 노동자상 반환에 따른 합의문에 서명했다.
당초 민주노총과 시민단체 등이 모인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특위는 지난해부터 몇 차례 동구 초량동 일본 총영사관 인근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옆에 노동자상을 설치하려 했다.
하지만 부산시가 인도 설치를 반대하자 지난달 1일 총영사관에서 50m가량 떨어진 정발 장군 동상 근처에 임시로 설치했다. 이후 건립특위와 관할 동구청은 정발 장군 옆 소공원에 노동자상을 설치하기로 합의하고 지난 14일 고정화 작업을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부산시는 노동자상이 인도에 허가 없이 설치된 불법 조형물이라는 이유를 들어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며 12일 노동자상을 강제 철거했다. 문제는 이후다. 건립특위 등이 부산시청 1층 로비를 점거하고 오 시장 출근저지 시위를 벌이자 시는 노동자상을 반환했다. 시는 “공론화 과정을 밟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곳곳에선 시가 민노총 주도의 건립특위에 밀린 것이란 비아냥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헌법으로 규정된 가장 중요한 기본권이고 이해당사자들은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중요한 건 관(官)이 중심을 잡고 이 목소리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가 특정 집단의 힘에 밀려 원칙없이 일처리한다는 인식을 시민들에 주게 되면 행정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윤봉학 사회2부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