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결재 않고 벌칙·출신 비하… 산업硏 ‘은밀한 괴롭힘’

입력 2019-04-21 18:40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에서 근무하는 A씨(50)는 지난달 황당한 소문을 들었다. 산업연구원에 각종 연구를 의뢰하는 방위사업청에서 자신을 ‘출입금지 인물’로 취급한다는 것이었다. 대외평판 관리가 중요한 연구위원에겐 치명적이었다. 수소문했더니 A씨의 소속 부서장을 맡은 B씨가 출처였다.

A씨는 이 일이 있기 전부터 B씨의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한 연구과제 결재를 올렸다가 B씨로부터 반려당하기도 했다. A씨는 21일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더라도 미리 부서장이 결재한 뒤에 보고서 발간 전까지 과제를 수정·보완하는 게 통상 절차인데, 통계조사내용 재검토라는 막연한 이유로 결재를 내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A씨는 제때 과제 제출을 못해 벌칙을 받았다. 지난 2월에는 올해 기본과제에 들어가는 연구의 중단 지시를 받았다. A씨가 버티자 다른 연구위원이 있는 자리에서 “산업생태계 개념도 모른다”며 면박을 주기도 했다. 두 사람의 갈등을 알게 된 다른 상급 간부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인 A씨의 이력을 두고 ‘군바리’라고 비하하기도 했다.

스트레스로 ‘안면근 파동’ 진단까지 받은 A씨는 감사실에 피해를 신고했다. 하지만 산업연구원은 소극 대응으로 일관했다. A씨는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가해자와의 분리를 요구했지만, 사건이 접수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산업연구원 정지상 원장은 “피해자가 병가를 낸 상태였기 때문에 분리조치는 복귀 이후에 처리토록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공정한 조사를 위해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조사위원회를 요청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B씨는 결재 반려, 기본과제 중단 요구 등은 절차상 문제가 없는 행위라고 반박한다. B씨는 “해당 부서장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지시였고, A씨를 괴롭히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했다. 험담에 대해서는 “어쩌다 술자리에서 한 번 할 수도 있는 얘기를 가지고 직장 내 괴롭힘이라 주장하는 건 과하다”고 말했다. 감사실은 현재 조사를 진행 중이다.

산업연구원 내부에서는 이번 기회에 직장 내 괴롭힘 등 부당행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산업연구원 노조가 설문조사를 했더니 응답자 93명 중 62명(66.7%)은 부당행위 경험을 토로했다. 뒷말 등으로 명예훼손을 경험했다는 응답, 부당한 인사를 당했다는 답이 각각 36.6%로 가장 많았다. 비인격적 대우를 받았다는 비율도 26.9%에 달했다. 산업연구원 노조 관계자는 “예상보다 많은 조직원이 부당행위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책 등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