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 오류, 서울서만 456채… 조세 신뢰도 흔들

입력 2019-04-17 19:22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공시가격의 신뢰도에 흠집이 났다. 정부는 올해 개별 단독주택 공시가격 산정·검증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하고 지방자치단체에 재검토 및 조정을 요청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공시가격 시정조치를 내리기는 처음이다.

대부분 ‘오류’는 공시가격 9억원 이상 고가주택에서 발생했다. 정부는 한국감정원과 지자체의 실수라고 했다. 하지만 고의가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정부가 고가주택의 공시가격 시세반영률(현실화율)을 끌어올려 ‘조세형평성’을 맞췄지만, 정작 개별 지자체까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토교통부는 17일 표준 단독주택과 개별 단독주택의 공시가격 격차가 큰 서울시 8개 자치구를 조사한 결과 456채에서 오류로 추정되는 사안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표준’과 ‘개별’의 공시가격 평균 변동률 격차가 3% 포인트를 넘는 서울 강남·마포·용산·성동·동작·종로·서대문·중구의 개별 단독주택 9만채를 전수조사한 결과다.

올해 국토부가 공시가격 기준으로 삼기 위해 선정한 표준 단독주택은 많이 오른 반면 지자체에서 산정하는 개별 단독주택은 덜 오르는 일이 벌어졌다. 서울의 격차가 특히 컸다. 용산구의 표준과 개별 간 격차는 7.65% 포인트, 강남구는 6.11% 포인트에 달했다. 예년의 평균 격차는 1~2% 포인트 수준이었다. 이에 국토부는 이달 초부터 공시가격 산정에 문제가 있는지를 황급히 검증했다.


개별 단독주택 공시가격은 여러 단계를 거쳐 매겨진다. 먼저 정부가 전국 22만채 표준 단독주택을 뽑고 감정원이 공시가격을 책정한다. 나머지 개별 단독주택은 지자체에서 표준 단독주택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한다. 토지 용도, 건물 특성에 따른 가격배율을 곱하는 식이다. 이어 감정원은 지자체가 산정한 게 적절한지 검증한다. 이후 지자체는 예비 공시가격을 공표하고, 소유자 의견 청취를 거쳐 최종 확정한다.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단계는 ‘지자체의 가격 산정’이나 ‘감정원의 검증’이다. 국토부는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가리지 않았다. 개별 단독주택의 비교 대상인 표준 단독주택을 잘못 선정한 경우, 용도지역 변경 등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경우, 용도지역 특성을 임의로 변경한 경우, 공시가격이 임의로 수정된 경우로 4가지 오류 유형만 나눴다. 인근에 비슷한 가격대의 표준 단독주택이 있는데도 먼 곳에 있는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표준 단독주택을 기준으로 삼아 발생한 오류 유형이 90%가량 차지했다. 예를 들어 올해 공시가격으로 25억3000만원이 책정된 서울 강남구의 A개별 단독주택은 주택 유형, 접근성 등에서 유사한 B표준 단독주택(공시가격 18억1000만원)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대신 B주택보다 약 200m 더 떨어진 C주택(공시가격 15억9000만원)을 비교 대상으로 정했다. 지자체에서 고가주택의 공시가격을 낮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기준점을 다르게 잡았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고의성’은 없었다고 확신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업무상 ‘단순 실수’에 불과하다는 판단이다. 김규현 국토부 토지정책관은 “소수의 공무원, 감정원 직원이 많은 업무를 하다보니 실수할 가능성이 높다. 의도적으로 가격을 낮추기 위해 조작하지는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매년 업무량이 비슷한데 올해 유독 공시가격 격차가 큰 이유를 해명하지 못했다.

국토부는 각 지자체에서 ‘공시가격 현실화 기조’를 충분히 반영해 오류를 수정할 것으로 본다. 456채의 개별 단독주택 공시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지자체들은 부동산가격공시위원회에서 최종 가격을 조정한 뒤 오는 30일 공시한다. 김 정책관은 “지난 11일 국토부와 서울시, 구청장 등이 간담회를 열고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했다. 자치구에서도 오류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지자체가 오류를 고치지 않아도 국토부에서 취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은 없다.

여기에다 서울의 일부 자치구만 조사를 해 지역별 형평성 논란도 제기될 수 있다. 국토부는 두 공시가격 간 격차가 평년에 비해 크지 않은 서울의 17개 자치구는 조사하지 않았다. 김 정책관은 “전산시스템 분석 등을 통해 오류가 의심되면 해당 지역에 통보할 방침”이라고 했다.

세종=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