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경쟁에 뒤처질까봐… 애플, 퀄컴과 ‘30조 소송 취하’ 전격 합의

입력 2019-04-18 04:02 수정 2019-04-18 10:14

270억 달러(약 30조원) 규모의 ‘세기의 특허’ 소송을 벌여온 애플과 퀄컴이 돌연 모든 소송을 취하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애플은 퀄컴의 5G 모뎀을 공급받아 아이폰 5G 모델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 업계에서는 내년 9월에 출시될 아이폰부터 5G가 탑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애플과 퀄컴은 16일(현지시간) 모든 소송을 취하하고 특허 라이선스 및 칩셋 공급 계약을 체결한다고 발표했다. 법적 소송에 들어간 지 2년여 만이다. 애플은 퀄컴에 특허 로열티를 지급한다. 특허 라이선스 계약은 6년으로 하고 2년 연장할 수 있다. 칩셋 공급도 다년간 하기로 했다.

미국 정보기술(IT) 업계를 대표하는 애플과 퀄컴의 합의는 며칠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G 경쟁에서 미국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한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이 한국과 같은 시기에 5G 상용화를 선언했지만 미국에 가장 먼저 출시되는 5G 스마트폰은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업체 제품이다. 화웨이, 샤오미, 오포 등 중국 업체들도 조만간 5G 스마트폰을 출시한다.

애플은 5G 모뎀을 못 구해 삼성전자에 공급 의사를 타진했으나 거절당했고, 화웨이가 애플에 공급 의사가 있음을 밝혔으나 이마저도 미·중 무역분쟁과 보안 우려 때문에 쉽지 않았다. 퀄컴과 갈라선 애플은 인텔로부터 LTE 모뎀을 받아 아이폰에 탑재하고 있다. 하지만 5G 모뎀의 경우 인텔은 2020년 하반기에나 공급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같은 미국 기업끼리 소송전으로 5G 초반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힘을 모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해석이 나온다. 애플과 퀄컴은 애플 팀 쿡 최고경영자(CEO)와 퀄컴 스티븐 몰렌코프 CEO가 모두 법정에 출석해 증언하겠다고 할 정도로 소송전에서 물러날 의사가 없었는데 갑자기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양사는 합의 배경 등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합의는 퀄컴에도 좋은 소식이다. 퀄컴은 특허 라이선스 비용으로 스마트폰 도매공급가의 5%를 받고 있다. 만약 소송에서 졌을 경우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붕괴해 큰 위기에 처할 수도 있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애플에 좋지만, 퀄컴에는 더 좋은 합의”라고 평가했다.

예상보다 빨리 5G 시장에서 경쟁자를 맞게 된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업체들도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5G 시장이 초기인 만큼 업체 간 경쟁보다는 시장의 파이 자체를 키우는 게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장 선점보다는 가입자 확대가 더 도움이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한편 합의 직후 애플에 통신 모뎀을 공급하던 인텔은 스마트폰용 5G 모뎀 사업을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인텔은 애플 때문이 아니라고 했지만 “수익을 낼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