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피아노, 바이올린, 드럼, 골프, 스노우보드 등 배우고 싶은 것은 다 배웠고 갖고 싶은 것도 다 가졌다. 홍콩과 사이판에 가서 쇼핑을 했고 온 몸을 명품으로 둘둘 감고 다녔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빠의 사업 때문에 중국 베이징으로 이사를 가서 새벽 4시부터 중국어 과외를 했고 요일별로 각 선생님을 집으로 모셔와 공부를 했다. 방학 때는 여러 지역을 여행하고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명품관을 돌며 쇼핑도 했다. 그러다 아빠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88평 아파트를 팔고 규모를 줄였지만 교육에 대해서는 양보가 없었던 엄마는 영어로 수업을 하는 국제부가 있는 학교로 두 학년 높게 전학을 시켰다. 그래도 나는 잘해냈고 당당했다. 그러나 가정형편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집이 작아지고 차가 없어지며 돈 걱정을 하는 엄마를 보며 서서히 위축돼 갔다. 그래도 엄마의 교육열은 여전해서 신문부, 모의유엔, 오케스트라, 연극부 활동도 했다. 그러나 결국 과외 과목도 줄이다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
결국 9년간 베이징 생활을 접고 귀국해 춘천에서 여고 1학년으로 편입학을 했다. 공부는 따라가기 벅찼고 열등감만 쌓였다. 성적은 바닥을 치고 몸도 자주 아프고 머리도 멍해졌다.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고 엄마와 싸우는 일이 잦아졌다. 학원에 취업을 한 엄마는 어느 날 뜬금없이 동생과 같이 교회에 가자고 했다. 엄마를 이길 수 없어 끌려가듯 따라갔지만 사람도 말씀도 싫고 모든 게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나 엄마와 동생의 변화는 나를 놀라게 했다.
어느 날 엄마는 촉촉한 눈으로 내 손을 꼭 잡으며 ‘정미야. 예수님이 정말 사회과 부도에도 나와 있는 역사 속 실존 인물이야. 그분이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어!’ 알아듣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매일 반복하셨다. 그리고 엄마가 너무 미안했다며 사과도 하셨다. 소리 지르고 염려로 매일 머리가 아프다고 하던 엄마가 너무 낯설고 신기하기만 했다. 나도 엄마나 동생처럼 살고 싶은 생각에 새로운 마음으로 수련회에 참석했다.
‘부활은 마스터키다, 예수는 역사다.’ 등 많은 말씀과 학생들의 뜨거운 간증을 들으며 나도 저들처럼 부활하신 예수님을 꼭 만나고 싶었다. 그러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는 고린도전서 말씀이 번개처럼 마음을 때렸다.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그렇다면? 아! 정말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네! 진짜 부활하셨네!’ 놀라웠다. 정말 예수님은 부활하셨고 바로 하나님이셨다.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물과 피를 쏟으며 죽으시고 부활하셨는데 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는 나의 이기적이고 못된 중심이 바로 보이며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죄를 눈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모셨다. 드디어 엄마와 동생과 같은 기쁨이 내게도 임했다. 삶에 지쳐있던 우리 가족의 얼굴이 펴지고 모이기만 하면 예수님 이야기로 기쁨이 넘쳤다.
먼저 단짝 친구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친구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신이 난 나는 전도지를 들고 노방전도를 시작했다. 택시를 타면 기사님께, 아파트 단지 공원의 할머님께, 공부방 주변에서 학생들에게도 정신없이 복음을 전했다. 담임선생님께도 전하며 자녀 교육에 40억원을 쓰신 우리 엄마의 간증영상도 함께 보았다. 그렇게 나는 기쁨과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했다. 학교 토론 동아리의 기장도 맡았고, 강원도내 고등학교 학생들과 하는 토론 대회에 참가해 상도 받았다.
나는 지금 예수님 때문에 다 가진 자로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간다. 오늘도 사랑하는 예수님과 함께 오직 주와 복음을 위해 당당하게 달려간다.
이정미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