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영등할망은 며느리를 데리고 온 게 틀림없다. 영등이 시작된 음력 2월 1일인 지난달 7일을 전후해 북서풍이 세차게 불더니 3월 한 달 내내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한겨울에도 북서풍이 터지면 길어야 3∼4일 불다 돌아섰는데 이번에는 일주일째 불어대기도 했다. 제주도에서는 영등할망이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심기가 좋지 않아 바람이 세게 불고 딸을 데려오면 기분이 좋아 바람이 순하다고 믿는다. 어떤 지방에서는 딸을 데려올 때 분홍치마가 날려 예쁘게 보이라고 바람이 불고 며느리 데려올 때는 치마가 젖으라고 비가 온다고 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영등할망이 올 때는 바람이 분다. 영등할망은 바람을 몰고 다닌다.
하늘에 사는 영등할망은 음력 2월 1일 제주도 제주시 건입동 사라봉으로 들어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15일 우도를 거쳐 떠난다. 그동안 보말을 까먹고 대신 소라, 전복, 미역, 우뭇가사리 등 각종 해산물 씨앗을 바다에 뿌린다. 할망이 기분이 좋아 씨앗을 많이 뿌리면 일 년 동안 바다 농사가 풍요롭고 기분이 나빠 씨앗을 적게 뿌리면 바다 소출이 적다. 이 할망 눈에 나지 않기 위해 매사 조심한다. 이 할망은 자상한 이미지보다는 변덕과 까탈이 심한 심술궂은 노파다. 할망이 제주도에 있는 동안 잘 달래 보내는 일은 그래서 제주도민들에게 정말 큰 일이었다.
영등할망이 제주도에 있는 동안 제주도 각 마을은 잔칫상을 크게 차려 이 할망을 달랜다. 사라봉 칠머리당이나 제주항의 제주수협에서 영등할망을 맞이하는 환영제를 하고 할망이 돌아다니는 보름 동안 각 마을 단위로 영등제를 올린다. 그리고 할망이 떠나는 날 우도에서 환송제를 성대하게 열어 노여움을 타지 않게 한다. 제주 칠머리당 영등굿은 1980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됐고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내가 사는 하도리에서는 음력 2월 13일 신동 바닷가 각시당에서 영등제를 한다. 이날 신동 해녀 40여명이 각자 똑같이 생긴 대바구니에 고기, 떡, 생선, 과일, 술 등 똑같은 제물을 담아 제단에 진설하고 영등할망에게 풍어, 건강 등 소망을 비는 치성을 드린다. 제를 마친 해녀들은 가져온 제물을 바다에 띄워 보내고 다시 해녀작업장에 둘러앉아 심방으로부터 쌀점으로 일 년 운세를 듣는다. 무엇을 조심해라, 어디에 가지 마라는 메시지가 나올 때마다 서로의 사정을 잘 아는 해녀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음바다가 된다. 맞으면 좋고 안 맞아도 그만이다. 대부분 조심하라는 말이다. 영등제, 즉 마을축제의 뒤풀이까지 이렇게 하루 종일 이어진다.
영등제는 바다에 출어를 알리고 풍어를 기원하는 신고에 해당한다. 겨울 동안 수온이 내려가면 고기들은 잔뜩 움츠리고 있다 수온이 바닥을 치고 반등하는 시점부터 움직이며 먹이활동을 시작한다. 국립해양조사원 자료에 따르면 제주시 건입동 제7부두 제주조위관측소 기준 올해 최저 수온은 섭씨 13.9도로 지난 2월 13일이었다. 음력으로 1월 9일이다. 지난해 월 평균 수온은 1월 14.5도, 2월 13.1도, 3월 13.8도, 4월 15.4도로 측정됐다. 이 수온이 8월이면 25.6도로 올라간다.
영등철이란 음력 2월 한 달을 말한다. 기온은 올라가지만 수온은 여전히 낮고 겨울 북서풍이 막바지 기승을 부리는 시기다. 이 바람이 바다를 두려워하며 풍요를 기원하는 바닷사람들에게 신격화 과정을 거쳐 영등할망으로 태어났다.
박두호 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