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한국어판을 감수한 경제학자인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가 15일 서울대에서 소득 불평등과 혁신을 주제로 특강을 했다. 이 교수는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이 혁신성장을 방해할 정도로 심화했고, 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더욱 과감하게 복지 정책을 펼 때라고 강조했다.
한국 사회의 경제적 현실을 ‘부자 정부, 가난한 국민’으로 규정한 그는 문재인정부의 경제 정책에 고언을 건네기도 했다. “‘임금주도’까지는 성공했지만 ‘소득주도’나 ‘성장’은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어 “소득주도성장이 이뤄지면 그게 곧 혁신성장”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지휘자처럼 오른팔을 휘저으며 우렁찬 목소리로 강연을 진행했다. 국가별 통계 수치를 제시하며 한국의 경우 상위 10%가 차지하는 소득과 부가 전체의 43% 정도라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불평등이 심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부자들이 부를 축적하면 ‘낙수효과’가 이어질 것이고, 불평등이 완화되면 노동 인센티브가 줄어든다”는 일각의 주장을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불평등의 심화는 사회적 갈등을 낳고, 교육 수준의 차이로 대물림되며, 결국 사회 전반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이다.
이 교수는 이 대목에서 “아무리 똑똑한 아이가 태어나도 정보의 비대칭으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그 아이는 특허를 낼 정도로 성장할 수 없다”며 “이는 곧 국가의 혁신에 악영향을 미치는 ‘로스트(잃어버린) 아인슈타인’”이라고 꼬집었다. 긴장하고 강연을 듣던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이 소리를 내 웃었다.
이 교수는 “2010년 이후 임금 격차가 줄어들며 수년간 소득 불평등이 완화되더니 2016년부터는 다시 심해진다”고 한국 사회의 불평등 현황을 말했다. 지난해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에서도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격차는 사상 최대로 벌어졌었다. 그는 가계동향조사에 대해 “표본이 바뀌는 등 통계에 논란이 있다”면서도 “소득 상위 10%는 근로소득과 보너스가 많아졌고, 일부 호황 업종의 ‘부유한 노동자’에게 소득이 많이 분배됐다고 본다”고 했다.
강연에서는 지난해부터 경제 정책의 ‘뜨거운 감자’였던 최저임금도 자연스럽게 언급됐다. 이 교수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을 받는 노동자 비율이 줄었고, 지난해에 소비는 괜찮았다”고 말했다. 임금 상승이 가계소득 증가로 이어져 소비가 늘어나는 메커니즘이 어느 정도 작동했다는 견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소비증가율은 2.8%로 2011년(2.9%) 이후 7년 만에 최고였다.
그러나 이 교수는 “최저임금을 올리는 노력만큼 재분배나 증세도 논의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소득주도 성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총수요를 확장하는 적극적 재정 확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부동산 양도소득세 증가 등으로 초과 세수가 발생했음에도 추가경정예산을 더 편성·집행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예산에 비해서 ‘재정 긴축’이 심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재정 지출을 더 늘렸다면 경제성장률이 3%를 넘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특히 이 교수는 ‘부자 정부, 가난한 국민이 된 셈’이라고 풀어 설명했다. 소득주도성장의 취지를 감안하면 정부가 재정 지출 대신 재정 건전성을 높인 것은 ‘너무 아낀 살림살이’였다는 해석이다. 재정의 효과적인 사용처를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이는 결국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SOC 투자를 ‘삽질’에 비유하며 “고용 효과나 건설투자에 미치는 효과를 고려하면 지난해에 ‘삽질’을 더 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한 학생이 강연 말미에 손을 들고 “국민연금이 2050년 이전에 고갈되거나 ‘더 내고 덜 받는’ 상황이 벌어진다고 한다. 재정 건전성 확보가 중요한데 재정 확장을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이에 이 교수는 “30여년 뒤 일을 걱정해 지금 코앞에 놓인 경기 침체 국면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그는 “재정 정책은 ‘타이밍’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경기 침체에서 빠져나오기 더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