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마도로스’ 김재철(84) 동원그룹 회장이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원양어선 선원에서 참치왕으로 우뚝 서기까지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한국의 원양산업을 일궈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김 회장은 16일 경기도 이천 동원리더스아카데미에서 열린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여러분의 역량을 믿고 회장에서 물러서서 활약상을 지켜보고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35년 전남 강진 시골 마을에서 7남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한국이 더 잘살려면 우수한 젊은이들이 바다를 개발해야 한다’는 담임선생님 말에 서울대 농대 장학생을 마다하고 국립수산대(현 부경대) 어로과에 입학했다.
23살 때 실습항해사로 한국 최초 원양어선인 ‘지남호’에 올랐다. ‘대학생이 무슨 고기를 잡느냐’는 핀잔에 그는 “보수도 필요 없고 항해 중 목숨을 잃어도 좋으니 태워만 달라”고 말했다. 정원 외 인원으로 취급받던 청년은 배를 탄 지 3년 만에 ‘지남2호’의 선장이 되며 10여년간 전 세계 바다를 누볐다. ‘캡틴 제이 씨 킴’이란 별명도 그때 얻었다.
‘그만한 능력을 갖고 있는데 왜 독립해서 사업할 생각을 안 하느냐’는 한 일본인 사업가의 말이 그의 인생을 또 한 번 바꿨다. 그동안 모은 돈 1000만원을 가지고 1969년 동원산업(현 동원그룹)을 창업했다. 그의 나이 35살이었다. 직원 5명, 원양어선 1척으로 시작한 동원산업은 새로운 어장 및 신어법 도입 등을 통해 빠르게 성장했다. 캡틴 제이 씨 킴의 동원산업은 두 차례 오일쇼크 등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며 현재 연매출 약 7조원, 재계 45위(지난해 기준) 기업으로 우뚝 섰다. 그는 99~2006년 한국무역협회장을 세 번 연임하기도 했다.
그는 경영에서도, 자식 교육에서도 정도(正道)를 추구했다. 직접 만든 사시(성실한 기업활동으로 사회정의 실현)를 몸소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91년 장남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에게 주식을 증여하면서 증여세 62억3800만원을 자진 납부했다. 당시 국세청은 이를 놓고 ‘세무조사로 추징하지 않고 신고한 증여세로는 사상 처음’이라고 언론에 밝힌 바 있다.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한 김 부회장을 6개월 동안 북태평양 명태잡이 어선에 태워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 한국사회 발전을 위해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그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일도 해나갈 것”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떠난 동원그룹은 차남 김남정 부회장이 이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