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지방재정분권이 속도를 내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원이 되는 지방소비세가 오르고, 중앙정부가 관리하던 지방사업 중 절반 이상이 내년에 지방으로 이양된다. 지자체의 재정 자율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다만 ‘꼬리표’ 없는 돈이라는 우려가 높다. 특정 사업(지방으로 이양한 사업)에 써야 한다는 꼬리표가 없다보니 지자체에서 곶감 빼먹듯 숙원사업 등에 쓸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선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들이 사장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지방재정분권은 크게 두 단계로 진행 중이다. 1단계로 중앙정부가 걷어 지방에 떼어주는 지방소비세율을 점차 인상해 가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걷힌 부가가치세의 11%를 지방소비세로 지자체에 분배했다. 이 비율은 올해 15%, 내년 21%로 늘어난다. 이에 따라 지방에 추가로 내려갈 지방소비세는 내년에 8조4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일부 국세를 지방세로 전환하는 2단계(2021~2022년) 작업을 진행해 현재 75대 25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70대 30까지 맞추는 게 정부 목표다. 그만큼 지자체가 가용할 수 있는 재원이 늘어나는 셈이다.
돈만 내려가는 건 아니다. 지자체 재원이 늘어나는 만큼 중앙정부 재원은 줄기 때문에 기획재정부는 중앙정부가 관리하던 지자체 사업을 지방정부로 넘기는 작업(기능 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세금을 떼어줬으니 일부 지방사업은 지자체에서 알아서 하라는 얘기다. 15일 자유한국당 추경호 의원이 기재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예산 기준으로 6조1501억원인 지방사업 가운데 58.0%(3조5695억원)에 이르는 사업이 내년부터 지방으로 이양된다. 이양사업 중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관리하던 사업(7737억원)이 가장 많다. 이어 국토교통부(7519억원) 환경부(5417억원) 등이다.
재원과 사업이 지방으로 넘어가면서 예산 편성과 집행 방식도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중앙정부가 인구나 낙후도 등을 고려해 예산 상한을 정해준다. 각 지자체는 상한 안에서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계정에 들어있는 사업 중 필요한 사업을 골라 소관 부처에 예산을 요구한다. 특정 사업에 예산(돈)이 붙어서 내려가기 때문에 지자체는 다른 곳에 돈을 쓸 수 없었다. 예산마다 ‘꼬리표’가 붙어 있는 셈이다. 해당 사업의 집행률을 따져서 페널티 또는 인센티브를 줄 수 있어 사업 관리도 쉽다.
그러나 재정분권에 따라 지자체에 내려가는 돈에는 이런 꼬리표가 없다. 지방으로 이양된 사업을 예산에 편성할지 말지는 지자체가 판단한다. 중앙정부 고민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정부 관계자는 “가뜩이나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에서 더 들어온 재원을 지방이양사업에 쓸지 의문스럽다. 추가 재원을 지역 숙원사업에 보탤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지방균형발전을 위해 설계한 사업들이 지방재정분권으로 사라지거나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다.
기재부는 이런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할지 고민 중이다. 지방이양사업 편성 규모, 집행률 등을 점검한 뒤 각 지자체가 아직 이양되지 않은 지방사업을 추진할 경우 중앙정부가 보조금을 차등 지원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지방재정분권이 정착되면 민의에 따라 각 지자체가 필요한 사업을 편성하고, 그 결정을 투표로 평가받는 선순환구조가 자리 잡게 될 것”이라며 “다만 그 전까지 과도기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