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으로 동행… ‘공동체’ 새살 돋는 안산

입력 2019-04-16 04:02
지난 1월 경기도 안산 일동 지역아동센터 방과후교실 졸업식에서 학부모·마을주민·학생들이 졸업생들을 축하해주고 있다. 사단법인 울타리넘어는 이 지역 초등학생들의 방과 후 활동을 지원하는 지역아동센터를 운영 중이다. 울타리넘어 제공

매년 4월이면 경기도 안산 단원고 앞길엔 벚꽃이 활짝 핀다. 15일 찾은 이곳에선 옅은 미소를 띤 채 벚꽃 밑을 거니는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몇 년 동안은 죄스러운 마음에 벚꽃을 쳐다볼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제 조금 편해졌습니다. 마을을 지키며 잘 살아가는 게 남아 있는 우리들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는 심경을 묻자 고잔동 주민 김모(56)씨는 이같이 답했다.

안산시민들의 가슴에서 세월호가 할퀴고 간 상처는 점점 아물고 있었다. 아픔을 함께 치유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려는 자발적 시민 모임의 역할이 컸다. 희생자 유가족과 주민들이 어우러지는 공동체 회복이 목표였다. 아픔을 이해하고 연대하면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증거가 지난 5년 안산시민들이 보낸 삶에 녹아 있었다.

2014년 9월 고잔동에 문을 연 ‘힐링센터 0416쉼과 힘’도 그중 하나다. 고잔동은 세월호 희생자 107명이 살았던 동네다. 임남희 힐링센터 사무국장은 “참사 이후 되레 갈등이 촉발되는 것을 보고 지역 공동체성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결속시킬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힐링센터를 열게 됐다”고 했다.

실제 참사 후 동네는 슬픔과 죄스러운 감정이 가득 찼었다. 시간이 흐르자 감정에 대한 피로감과 적대감이 쌓였고, 주민 사이 대립도 시작됐다. 간접 피해자인 주민 중 일부는 ‘유가족 때문에 분위기가 침체된다’ ‘정부로부터 수십억원을 받았으면 그만 슬퍼해도 괜찮다’ 등 위험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힐링센터는 유가족과 주민이 함께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유가족이 합동분향소 대기실에서 익힌 공방기술을 주민들과 나누게 한 ‘만개창작공방’이 대표적이다. 강사로 참여한 한 유가족은 “유가족이 아닌 ‘선생님’으로 불리니 내 역할이 재정립되고 다시 동네 주민의 일원이 된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유가족과 주민들이 참여하는 오케스트라도 2014년 10월 구성된 이후 꾸준히 공연을 하고 있다.

‘다크 투어리즘’의 일환으로 주민이 참사 이전과 이후의 동네 역사를 알리는 ‘마을 해설사’로 양성하는 작업도 실시했다. 다크 투어리즘은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여행을 말한다.

힐링센터는 지난해부터 이름을 ‘고잔문화복지센터’로 바꿨다. 유가족과 주민 사이에 경계를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 또 유가족과 주민들이 함께 부대끼는 가운데 예전의 마을을 회복하고 ‘같이 사는 우리 마을’이라는 주인의식을 갖도록 하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웃 지역에서도 변화는 있었다. 안산시 상록구 일동의 마을공동체 ‘울타리넘어’는 2005년 시작돼 애초 육아 등을 논의하는 단순 친목모임 성격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성격이 바뀌었다. 정은철 울타리넘어 사무국장은 “참사 이후 서로에게 힘이 돼 주는 마을을 만들어보자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말했다.

2015년 공동체의 거점으로 마련된 카페 ‘마실’은 주민들에게 놀이터 같은 공간이 됐다. 이곳에서는 ‘세월호 기록을 펼치다’ 사업의 일환으로 세월호 유가족과 비누·화장품·퀼트 만들기 작업을 하기도 했다. 영화모임, 세월호 기억모임, 토크콘서트 등 모임들이 카페를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됐다. 주민들은 합심해 매년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생일상을 차리기도 한다.

공동체 역할은 지역 내 어린이들의 안전한 통학로를 만들기 위한 사업까지 확대됐다. 불법주차 차량에 노란 풍선을 다는 사업인데 여기에 주민들뿐 아니라 파출소장과 동사무소 직원, 인근 학교 교직원 등도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정 사무국장은 공동체 회복을 위한 핵심 가치로 ‘기다림과 배려’를 꼽았다. 그는 “여러 사람이 함께 일을 추진하다보면 서로 욕구가 다르기에 구성원들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때까지 기다리는 인내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산=이사야 이동환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