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42차례 가졌지만, 경사노위 ILO 협약 합의 끝내 결렬

입력 2019-04-16 04:04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사회적 합의에 실패했다. 공익위원 권고안을 만들어 국회로 넘겼다. 박수근(오른쪽) 위원장이 15일 서울 종로구 경사노위 대회의실에서 공익위원 최종안을 발표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사·정 대화가 파국으로 끝났다. 공익위원들은 합리적인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협약권) 마련이 필요하다는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 논란의 핵심이었던 ‘해고자의 노동조합 가입 허용’과 같은 초기 권고사항이 그대로 담겼다. 대신 ‘노조의 사업장 점거 허용’은 문제가 있다며 경영계 편의를 일부 반영했다.

그동안 논의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던 노·사 양측은 이번에도 각자의 길을 예고했다. 경영계는 “공익위원안은 합의안이 아니다”며 따로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혔다. 노동계 일부에서도 불만을 표시하며 총파업 가능성을 시사했다. 여기에다 통상마찰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한국 정부의 ILO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며 ‘통상 압박’을 예고하고 있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에는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 개선위원회는 15일 비공식 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문을 발표했다. 개선위는 대통령 공약인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왔다. 박수근 위원장을 비롯한 공익위원 7명은 42차례 공식·비공식 회의(전체 회의 25차례, 간사단 회의 6차례, 공익위원 회의 11차례)를 가졌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개선위는 위원 21명(노동계 7명, 경영계 7명, 공익위원 7명)으로 구성돼 있다. 개선위는 더 이상 논의는 없다며 공익위원 최종안을 제시했다.


공익위원들은 한국이 비준하지 않은 4개의 ILO 핵심협약을 토대로 노동 3권 관련 제도 권고안을 정리했다. 경영계 반발이 집중되는 단결권에선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라는 기존 권고를 유지했다.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라는 내용도 더했다. 공무원의 노조 가입 권한을 제한한 공무원노조법은 직급에 상관없이 가입 가능하도록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교사의 노조 설립 제한도 철폐하라고 제안했다. 모두 ILO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항목이다.

단체교섭권에선 교섭 창구 단일화 때 기업이 지나치게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하라고 짚었다.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발생한 폐해를 바로잡자는 취지다. 초안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새 내용도 추가했다. 단체행동권 부분에서 직장을 점거하며 파업하는 행태를 제한할 수 있도록 법 정비가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단체협약 유효기간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늘려 지나친 교섭비용을 절감할 수 있도록 했다. 대신 경영계에서 요구해 온 ‘파업 기간 대체고용 허용’은 기존과 마찬가지로 불허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부당노동행위 처벌 규정 삭제 요구 역시 반영하지 않았다.

공익위원 최종안은 국회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노동법 개정안을 심의할 때 참고자료로 쓰인다. 하지만 노사 갈등이 봉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권고안이라 영향력은 적다. 그만큼 국회 논의도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공익위원만의 입장은 공신력이 없다”며 “경영계는 향후 별도로 자체 입장을 피력하겠다”고 밝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사업장 점거 제한은) 노조의 정당한 교섭·투쟁을 탄압할 빌미를 준 내용이다. 이를 보장하려는 국회의 시도는 총파업·총력투쟁을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종=신준섭 정현수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