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산업 구조조정 실패한 한국 제조업의 현실

입력 2019-04-16 04:01
위기에 처한 제조업의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보고서가 나왔다. 대한상공회의소의 ‘한국 제조업 중장기 추세 분석’은 2007년과 2017년의 수출액 상위 10개 품목을 비교했다. 컴퓨터 부품과 모니터가 10대 품목에서 빠지고 해양플랜트와 유화원료가 포함됐다. 그게 다였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력 업종은 사실상 달라진 게 없었다. 10대 수출 품목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절반 가까이(46.6%) 차지하고 있다. 비중이 30% 안팎인 미국 중국 독일 일본을 크게 웃돈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수출 경쟁력을 몇몇 품목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런 품목이 10년 전 그대로라는 게 보고서 요지였다. 더 심각한 건 세계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역 규모가 증가하는 통신기기 의약 비철금속 등 성장 업종은 글로벌 점유율이 하락한 반면 제지 의류 가전 등 쇠퇴 업종은 상승했다. 시대에 맞게 변화하지 못하고 늘 하던 대로 해온 탓에 사양산업만 잘하는 처지가 됐다.

이 보고서는 “산업 구조조정에 실패했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주력 업종의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아 산업 신진대사가 막혀버렸고, 이는 제조업 생산성 저하로 이어졌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산업별 노동생산성 변동요인 분석’ 보고서에서 반도체 자동차 선박 기계 등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2011∼2015년 6~7% 포인트씩 떨어졌다고 밝혔다. 혁신이 부진한 현실과 한계기업 퇴출이 어려운 구조를 원인으로 꼽으며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융합, 선도 산업 발굴, 혁신 창업 지원, 이를 위한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렇게 된 책임은 정부에 있다. 고성장 시대가 저무는 신호가 왔을 때, 저성장이 현실로 닥쳤을 때, 지루한 정체가 이어질 때 정부는 움직였어야 했다. 옥석을 가려 사양산업의 출구전략을 찾는 데 게을렀고, 미래 산업 육성에 실패했고, 혁신 기업이 나올 여건도 만들지 못했다. 출범하는 정부마다 신성장동력을 선정하고 규제철폐를 외쳤지만, 그렇게 나열한 업종은 산업의 축으로 성장하지 못했으며 이를 가로막는 규제는 아직도 개혁 대상에 머물러 있다. 한국 제조업의 위태로운 현실은 자초한 것이다. 10년간 10대 수출 품목 중 4개가 바뀐 중국은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서 육성산업, 제한산업, 도태산업을 지정해 상시적인 산업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이런 나라와 경쟁하려면 자본과 노동이 미래 산업에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시스템을 서둘러 갖춰야 한다. 산업 체질은 예전 그대로인 상황에서 4차 혁명의 물결이 들이닥쳤다. 이대로 가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