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얼굴) 북한 국무위원장이 우리 정부를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라”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북·미 비핵화 협상 교착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남북 경제협력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자 이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김 위원장은 제14기 최고인민회의 1차회의 시정연설에서 “남조선당국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지고 (미국에 대해) 자신이 할 소리는 당당히 하면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지난 13일 보도했다. 그는 이어 “남조선당국이 진실로 북남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의 길로 나아갈 의향이라면 말로써가 아니라 실천적 행동으로 진심을 보여주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이 이처럼 강한 어조로 우리 정부를 힐난한 것은 북·미 대화가 중단되자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과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 간 경제협력 사업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14일 “미국 눈치를 보지 말고, 남북 경협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라는 주문”이라며 “김 위원장이 우리 정부를 향해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라’고 한 것이 그런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에는 곧 재개될 북·미 협상에서 자신의 편에서 미국을 설득하라는 대남 압박도 포함된 것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의 직설적 비난에 그동안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자처해 온 청와대와 정부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정부는 북·미 간 교착상황에서도 남측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사안들을 준비하겠다고 밝혀왔지만 현재로선 운신의 폭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허용 여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 경협 문제는 미국의 강경한 태도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면서 “북한도 이런 사정을 잘 알면서 압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