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7년 만에 낙태죄에 대해 판단을 달리하면서 일정 기간 이하의 임신에 대해서는 낙태가 합법화될 전망이다. 다만 낙태 허용 시기나 필요한 절차 등 요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세부적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과제는 국회로 넘어간 것이다. 국회는 헌재 결정 취지를 반영해 내년 12월 31일까지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헌재 결정을 존중하며 입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헌재가 2012년과 다른 판단을 내놓은 이유는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만큼 임부(妊婦)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사익도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특히 헌재는 태아의 성장단계에 따라 법 적용에 차등을 둘 수 있다고 판단했다.
우선 헌재는 임신 22주 전까지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는 산부인과 학계 의견에 주목했다. 임신 22주 전까지는 임부가 낙태를 결정할지 말지 고민할 수 있는 ‘결정가능기간’으로 두고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장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정가능기간까지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은 여성에게 원하지 않는 임신과 출산을 강제하면서 신체적·심리적 부담을 안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자보건법이 일부 낙태를 허용하고 있지만 미혼모 문제 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경우를 포섭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임신한 여성이 임신을 유지 또는 종결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심리적·사회적·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全人的)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낙태의 사회·경제적 사유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칠 것인지, 임부가 상담 등 숙려기간을 거치도록 절차적 요건을 둘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법 개정 전까지 낙태를 허용할 수 있는 기간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사회·경제적 사유를 어떻게 확인할지 등을 둘러싼 또 다른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날 단순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 3인은 임신 14주 내에서는 어떤 사유도 요구하지 않고 임부가 자신의 판단 아래 낙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2012년 합헌 결정 당시 위헌 의견을 제시했던 재판관들은 임신 12주를 기준으로 허용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때문에 다수 의견으로 제시된 기준인 임신 22주와 임신 12~14주 사이에서 허용 가능 시기 논의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는 “기간과 절차상의 제한을 둬야 하는지 여부는 앞으로 고민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결국 우리에게 맞는 문화와 사회적 인식을 고려해 우리에게 맞는 답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헌재 결정은 현재 진행 중인 수사와 재판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낙태죄와 관련해 수사 중인 사건은 8건이다. 재판에 넘겨져 심리가 진행 중인 사건은 16건이다. 대검 관계자는 “결정문을 살펴보고 후속조치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헌법소원사건 심판을 대리한 법무법인 지향의 김수정 변호사는 선고 직후 기자회견에서 “검찰이 사실상 추가 기소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되고 법원도 헌재의 결정 취지에 따라서 무죄를 선고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전했다.
이가현 구승은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