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하는 브렉시트 시한이 10월 31일로 다시 연기됐다.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합의안을 승인하면 바로 브렉시트가 허용되는 ‘탄력적 연기’다. 다만 영국이 5월 23~26일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6월 1일 노딜 브렉시트가 시행된다. EU의 브렉시트 추가 연기 승인에도 불구하고 영국 의회의 결정에 따른 변수들로 불확실성은 지속될 전망이다.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11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끝난 EU 특별정상회의에서 브렉시트 추가 연장이 승인됐다고 보도했다. 이날 회의는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 시기를 4월 12일에서 6월 30일까지로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시작됐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영국이 6월 말까지 브렉시트 합의안 비준을 처리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2020년 3월까지 1년간 장기 연기하는 방안을 상정한 바 있다.
독일 등 대부분의 회원국 정상들은 브렉시트를 올해 말 또는 내년 3월 말까지 장기 연기해 영국 정치권이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부여하자는 입장이었지만 “장기 연기는 해결책이 아니다”는 프랑스의 반대가 워낙 거세 10월 31일까지로 시한이 정해졌다. 투스크 상임의장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을 열고 “부디 영국이 6개월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길 바란다”면서 “브렉시트 연기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경고했다.
EU는 브렉시트 추가 연기를 승인하면서도 ‘조건’을 분명히 했다. 우선 브렉시트 합의안 중 ‘이혼조건’을 담은 EU 탈퇴협정 재협상은 불가능하다. 또한 영국이 유럽의회 선거 기간인 5월 23∼26일 여전히 EU 회원국으로 남아 있다면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 EU는 6월 21일 정상회의에서 영국의 브렉시트 연기 조건 준수 여부를 점검하게 되며, 영국은 브렉시트 이전까지 EU 사업에 개입하지 못한다. 메이 총리는 EU 합의와 별개로 “영국은 가능한 한 빨리 EU를 떠나겠다”면서 “영국 의회가 합의를 이룬다면 5월 22일에도 탈퇴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영국은 유럽의회 선거에도 참여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메이 총리의 희망과 달리 영국 의회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을 빨리 승인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게다가 리더십이 바닥에 떨어진 메이 총리가 총리직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메이 총리는 그동안 집권 보수당과 연정 파트너인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에 기대어 하원에서 합의안 승인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세 번이나 부결되자 전략을 수정해 제1야당인 노동당에 손을 내밀었다. 다만 노동당이 요구하는 EU 관세동맹 잔류, 제2 국민투표에 대해 메이 총리가 수용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보수당은 메이 총리의 배신에 이어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에 분노하고 있다. 보수당 지도부가 이날 메이 총리의 거취 문제를 놓고 긴 회의를 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보수당 내 강경파들은 메이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회의에서 “메이 총리는 레임덕이 아닌 데드덕(dead duck)”이라며 “7월이면 새로운 리더가 등장할 것”이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메이 총리의 사퇴 여부가 브렉시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메이 총리는 합의안이 하원에서 승인되면 조기사퇴하겠다고 보수당 의원들에게 밝힌 상태다. 하지만 합의안이 여전히 의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황에서 브렉시트가 10월 말까지 연기되면서 메이 총리가 사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메이 총리를 대신해 브렉시트 강경파가 새롭게 총리가 될 경우 상황을 더욱 예측하기 어렵다. 신임 총리가 EU와의 합의를 깨뜨리고 재협상을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