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재인정부의 정치 행태는 오만해 보인다. 청와대 전 대변인은 ‘빚내서 집 사라’는 박근혜정부의 슬로건을 충실히 이행했다. 투기냐 투자냐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노후 대비용’이라고 감쌌다. 당사자는 사과 없이 농만 던지고 본인 소유의 수십억원짜리 허름한 상가로 떠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일 국회에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못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김연철 통일부 장관을 임명했다. 이로써 현 정부 출범 후 2년 동안 국회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급 인사는 13명이 됐다. 박근혜정부 4년 동안 10명이었다. 일견 뻔뻔해 보이지만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점에서 뻔뻔함보다는 오만함에 가깝다.
정치를 떠나 경제정책에서도 오만함은 엿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최저임금 인상정책이다. 노동시장 상황을 무시하고 최저임금만 올리면 소득주도성장이 이뤄질 것이라는 오만함은 오히려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낳고 있다. 정부 내에서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만 대나무 숲에서 메아리친다.
이런 오만함에 더해 권력을 쥔 이들의 편견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단기처방에만 매달리고 있다. 정부는 최근 6조원대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공식화했다. 당초 기획재정부는 좀 더 신중히 검토해보자며 5~6월 추경 편성 의견을 냈다. 그러나 기재부의 건의는 무시됐다.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이 편성하라’는 여당의 의견대로 가고 있다. 행여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면 현 정부 철학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싸늘한 시선을 받는다. 확장적 재정정책만이 올바른 재정정책이라는 편견이 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물론 나랏돈은 쓰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용처를 억지로 늘리는 다다익선식 추경은 정치적 효과는 있을지언정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추경은 본 예산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는 성격이다. 올해 예산에 잡힌 1조9600억원의 미세먼지 관련 예산을 반도 쓰지 못한 상황에서 미세먼지에 또다시 1조원 이상의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정상적이라 보기 어렵다. 2년 연속 4월 추경 편성이 현실화되자 재정 당국 내에서는 추경이 아니라 ‘춘(春)경’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추경뿐 아니라 최근 경제정책을 보면 재정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듯하다. 연초에는 국가 균형발전 명목으로 각 지방자치단체들에 24조원 규모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해줬다. 이도 모자라 지난 3일에는 예타 문턱을 완화하는 내용의 개편안도 마련했다.
3년째 계속된 세수 호황은 올해부터 꺾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수출을 견인하던 반도체 경기가 꺾였고, 이는 법인세가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재정 확장론자들은 현재 미국 등 선진국도 재정을 경쟁적으로 풀고 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미국처럼 기축통화를 갖고 있지 않다. 가뜩이나 저출산 문제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얼마 되지도 않을 후손들에게 빚더미만 안겨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편견은 정부 밖에서도 존재한다. 일부 언론은 마치 1997년 ‘IMF 사태’가 곧 다시 도래할 것처럼 위기론을 펴고 있다. 대내외적으로 볼 때 경기 하방 리스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대형 위기설’을 확대 재생산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 앞으로의 경기침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태풍보다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처럼 가랑비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태풍이야 그때 잠깐 피하면 되지만 조금씩 조금씩 옷을 흠뻑 적시는 가랑비가 더 무섭다. 정부가 추경 같은 단발성 이벤트보다는 기득권과 직역이기주의에 막혀 있는 서비스업 개혁 같은 중장기적 경제 살리기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제인 오스틴의 고전 ‘오만과 편견’은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문재인정부가 정치는 차치하고 경제 분야에서라도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해피엔딩을 이루기를 고대한다. 임기는 아직 반 이상 남았다.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