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처음으로 대미 메시지를 내놨다. 한마디로 제재로 북한을 굴복시키려는 미국의 노선이 틀렸다는 거다. 김 위원장은 10일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되어 오판하는 적대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괄타결 이후 제재를 풀겠다는 미국에 보내는 불만의 메시지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불만을 표시하면서도 직접적인 대미 비난이나 핵·미사일 실험 같은 무력도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미국의 빅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렇다고 북·미 관계가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전으로 후퇴하는 것은 북한에 이로울 게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현 상황을 유지하면서 미국의 태도 변화를 지켜보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김 위원장이 ‘자력 갱생’을 선언한 바탕에는 이런 인식이 깔려 있다.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조건과 실정에 맞고 우리의 힘과 기술, 자원에 의거한 자립적 민족경제에 토대하여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사회주의 건설을 더욱 줄기차게 전진시켜 나가겠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정치국 확대회의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무려 20여 차례 자력갱생을 언급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 맞서 북한 독자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룩해 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김 위원장의 희망사항일 뿐 실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2015년 -1.1% 성장을 기록한 북한 경제는 2016년 플러스(3.9%)로 잠깐 회복했다가 2017년 -3.5%, 2018년 -5.0%(추정) 연거푸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북한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영향이 가장 크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자력갱생은 북한 주민을 아사 공포로 몰아넣은 고난의 행군 같은 잘못을 반복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이 줄기차게 미국에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것도 그 위력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가 아닌가. 북·미 관계가 후퇴한 건 분명하나 대화의 동력까지 꺼진 건 아니다. 11일 한·미 정상회담으로 새로운 모멘텀도 만들어졌다. 김 위원장이 진정으로 북한 경제 발전을 바란다면 자력갱생은 답이 아니다.
[사설] ‘자력갱생’ 선언한 김정은, ‘고난의 행군’ 반복할 건가
입력 2019-04-12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