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스톤디자인이 요즘 대학에서 많이 시도되고 있다. 지역사회의 문제해결 과정에 학생들이 참여해 신선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학생들은 현장 중심의 문제해결 역량을 키워나가는 교육 방식이다. 필자도 사회혁신 캡스톤디자인을 열어서 학생들로 하여금 소셜벤처와 협력해 사회 문제 해결에 참여하도록 했다. 소셜벤처는 사회 문제를 혁신적 방법으로 해결하는 조직이기에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사회 문제를 접할 수 있고, 소셜벤처 창업과 경영을 이해하게 된다. 소셜벤처가를 직접 만나는 과정에서 사회혁신가로서의 꿈을 키워가기도 한다.
이번 학기에 학생들이 만난 멘탈헬스코리아는 정신건강에 대해 혁신적 접근을 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다. 카이스트 사회적기업가 MBA에서 만나 멘탈헬스코리아를 공동 창업한 최용석 장은하 대표는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지만 쉽게 밝히지 못하는 우울과 정신건강에 대해 소리 내 말하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한다. 정신건강의 문제가 있을 때 사람들이 환자로서보다는 정신건강서비스의 소비자로서 당당하게 정보를 구하고 질 높은 치료와 전문기관을 찾도록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자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정신적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아픔의 전문가이자 치유자로 전환해 ‘동료지원가’로 양성하는 활동도 그중 하나다.
정신건강의 영역은 조기 발견과 개입이 매우 중요한데, 많은 선진국에서 가장 효과적인 조기 개입 방법으로 동료지원가를 활용하고 있다. 동료지원가는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공감을 바탕으로 정신적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조기에 발견해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설득하는 등의 활동을 수행한다. 미국 뉴욕시에서는 동료지원가에 대한 면허를 발급하고 있으며 1000명을 고용하기도 했다. 또한 선진국에서는 사후 대처보다는 예방을 중심으로 조기 관심과 발견 및 개입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인구 6650만명의 영국은 정신건강 조기 개입을 위한 예산이 1조6000억원에 달한다. 한국은 인구가 5163만명인데 2018년 기준 정신보건 총예산은 604억이고 그 가운데 조기 개입에 쓰이는 예산은 30억원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우울증 인구는 약 1000만명으로 국민 4명 중 1명이 정신적 어려움을 경험하지만 우울증 환자 10명 가운데 9명은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2018년 서울대병원에서 소아·청소년 4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8%가 자살을 생각하는 등 심각한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83%는 치료를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음이 아플 때 바로 자신의 정신건강상 문제를 인정하고 전문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동료지원가를 활용한다는 것은 정신건강 분야에서 시스템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접근이다. 전문가의 성역을 넘어 아픔을 겪은 사람들 스스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지해주는 선순환을 만들어나가는 일이다.
최근 청소년 자해가 정신의학계는 물론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멘탈헬스코리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청소년 동료지원가를 육성해 활용하자고 제안한다. 동료지원가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공감과 지지는 청소년들에게 설득력 있게 작용해 그들이 정신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조기에 전문가의 치료를 받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단체는 작년에 교보생명의 후원과 한국사회투자의 지원으로 ‘STAR 프로그램’을 열었고 이를 통해 청소년 10명이 교육을 받았다. 여기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자신의 아픔을 치유하면서 동시에 다른 친구들을 돕는 동료지원가로 거듭나고 있다. 이들은 청소년 자해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했고 지난 2월 광화문에서 자해 예방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올해는 삼성전자의 후원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으로 100명의 청소년 동료지원가를 육성할 계획이다.
멘탈헬스코리아 장은하 대표로부터 마음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가장 좋은 치료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접한 학생들은 대학생들의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한 활동들을 계획해 캠퍼스에서 실현해보기로 했다. 정신건강에 대한 혁신적 접근을 실현해나가는 멘탈헬스코리아의 작은 한걸음이 우리 사회의 천만 우울증 인구가 고통에서 벗어나는 데 의미 있는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이 일에 동참한 학생들도 소셜벤처와의 만남을 계기로 사회 문제 해결에 열정을 가지고 또 다른 사회혁신가의 길로 나서게 될 날을 고대해 본다.
강민정 한림대 사회혁신경영 융합전공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