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공적 연기금이 줄줄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데 반해 공제회들은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성적표를 받아든 곳이 바로 대한지방행정공제회다. 행정공제회는 지방공무원을 위한 공제회로 지난해 수익률 4%를 기록했다. 연기금과의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하락장에서도 안정적인 수익률을 올린 배경에는 투자처를 다변화하고 대체투자를 늘린 것이 주효했다. 지난해 9월 말 역대 최다 득표를 얻으며 취임한 한경호(56) 이사장의 리더십이 일조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이사장은 다양한 부처와 지방 현장을 경험한 행정가 출신이다. 1984년 기술고시 20회로 입직해 경남도 기획관, 사천시 부시장을 거쳐 2003년 행정자치부 행정담당관, 2004년 국무총리실 행정자치과장을 거쳤다. 이후 2007년 행정자치부 재정기획관, 2009년 소방방재청 기획조정관을 지냈고 2015년에는 정부청사관리소장과 세종시 행정부시장을 역임했다. 이후 2017년에는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대선에 출마하면서 경남도 도지사권한대행을 맡아 도정을 이끌었다.
행정가 출신답게 한 이사장은 취임 후 조직 내실을 다지기 위해 행정공제회의 당면 과제들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먼저 그는 행정안전부 사무관부터 장관까지 만나 직접 인력 증원과 직원 보수 증액을 건의했다. 행정공제회는 정부나 지자체 재정지원 없이 회원 자금으로 운영되고 투자의사 결정도 독립적으로 수행하지만 임원이나 예산, 정관개정 승인 등은 행안부가 담당한다.
지난 3일 서울 용산구 행정공제회 사무실에서 만난 한 이사장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소통과 협치’의 가치는 오랜 행정 경험에서 나온 운영 철학”이라며 “우리가 하는 일을 제대로 알리고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진솔하게 애로사항을 전달했는데 그러다보니 원활하게 관철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산 12조원을 관리하는 곳인데 인력과 조직이 1997년 자산규모 1조원일 때 수준에서 머물러 있었다”며 “올해는 인력도 16명 늘리고 보수도 4.9% 높여서 공제회 직원들의 사기를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총리실 소속이어서 가입이 늦어진 서울시 공무원들의 가입률(78%·지난해 기준)을 높이기 위해 한 이사장은 박원순 서울시장과도 최근 만났다.
한 이사장의 소통 행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자산운용사들을 찾아가 수익 창출에 대한 당부를 했다. 자산규모 12조원을 관리하는 행정공제회 수장이 직접 자산운용사를 찾아간 것은 선례가 없는 일이었다. 한 이사장은 “우리와 자산운용사는 전략적 동반관계”라며 “연기금과 공제회의 무한 경쟁 시대에서 발로 뛰어야 수익을 잘 창출해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지방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서울을 찾았을 때 근무할 수 있도록 서울 용산구 행정공제회 1층에 ‘포바(POBA) 라운지’도 꾸미고 있다. 직접 회원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종의 ‘창구’로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과거 지방공무원의 급여는 박봉으로 인식됐고 은퇴 이후 대비가 중요한 상황이었다. 공무원연금으로 도움을 받지만 여기에 행정공제회의 상품을 활용해 노후를 지내는 경우가 많다. 행정공제회 퇴직급여제도는 가입률이 97%에 달한다. 회원들의 가입률이 높은 이유에 대해 한 이사장은 첫 번째로 “상품성이 민간 상품에 비해 좋다”고 설명했다. 퇴직급여 상품의 경우 이자가 3.55%(복리이자)인데 시중은행 상품으로 비교하면 5~6%과 비슷한 수준이다. 출범 44년이 되면서 오랜 기간 수익 노하우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공제회에 대한 신뢰가 높은 것도 그 비결로 꼽았다.
매달 공무원들이 월급의 일정부분을 낸 돈으로 행정공제회가 수익률 관리를 하기 때문에 윤리 경영도 강조하고 있다. 회원들이 공무원인 만큼 수익률 관리 외에도 사회적 책임에 대한 활동도 늘려가고 있다. 한 이사장은 “수익창출 기관이지만 사회책임투자(SRI)를 늘리려고 한다”며 “지난해의 경우 사회책임펀드에 500억원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지배구조가 투명한 기업체나 근로 환경이 우수한 ‘착한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이다.
한 이사장은 2021년까지 임기 내 자산 15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올해 목표 수익률은 4.5%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가 위축되면서 자산운용 환경이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그는 “올해는 41% 수준인 해외투자 비중을 전체 자산의 50%까지 확대하고 대체투자 비중을 60% 수준으로 유지해 수익률 관리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투자 확대와 신규 수익원을 발굴하기 위해 해외 연기금과의 공동 투자에도 나선다.
다음 달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교직원연금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다. 미국과 유럽 등 현지 운용사에도 직원을 직접 파견해 신사업 발굴에 나선다. 한 이사장은 “공직 근무 시절과 마찬가지로 관행에서 벗어나 사업에 변화를 주고 수요자 중심의 조직을 운영하려고 한다”며 “임기를 마칠 때 회원들로부터 ‘공제회에 많은 변화를 주고 동시에 높은 수익률을 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한지방행정공제회
대한지방행정공제회는 대한지방행정공제회법에 근거해 설립된 단체로 지방공무원의 공제기금 조성과 운영, 복리후생 증진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교직원공제회, 군인공제회와 함께 3대 공제회 중 한 곳이다. 1975년 2월 1일 설립됐으며 지난해 기준 총 자산은 12조2288억원에 달한다. 회원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27만9833명으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나 행정안전부 지방 행정사무 종사자로 구성된 일반회원과 퇴직 후 공제회의 ‘한아름목돈예탁’ 상품에 가입해 회원 자격을 유지하는 특별회원으로 나뉜다. 매달 1만원부터 100만원까지 납입할 수 있는데 수익률이 좋다 보니 가입자 1인당 평균 납입금액은 36만원에 달한다.
투자 방식은 주식과 채권, 대체투자, 사회간접자본 등 다양하다. 올해 행정공제회 자산운용을 담당하는 장동헌 사업이사가 처음으로 연임됐고 이돈규 주식팀장도 임기 중 성과를 인정 받아 연임에 성공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