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 유학자의 ‘경’사상을 되새긴다”

입력 2019-04-10 19:18 수정 2019-04-10 23:30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450주년 재현’ 참가자들이 1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잠실한강공원을 걷고 있다. 행사를 이끄는 김병일(앞줄 왼쪽) 재현단장은 “퇴계의 귀향길이 산티아고 순례길보다 더 의미 있게 대중에게 다가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10일 오전 9시 서울 송파구 잠실대교 남단 잠실한강공원. 잠실종합운동장 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갓을 쓰고 흰 도포를 입은 이들이었다.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450주년 재현 행사’ 참가자들이었다.

조선시대 최고 유학자였던 퇴계 이황(1501~1570)은 1569년 음력 3월 선조에게 하직을 고하고 경북 안동의 도산서당으로 귀향했다. 행사는 23일까지 13일간 귀향길을 그대로 따라 걸으며 퇴계의 귀향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다. 도산서원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이 공동 주관했다.

재현 행사 단장인 김병일(74) 도산서원 원장은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오늘 아침 출발할 때 축복처럼 그쳤다”며 “퇴계의 뜻을 기리는 이 행사가 잘 마무리될 것 같다”며 반색했다. 퇴계 선생은 68세이던 1568년 7월 조정의 부름을 받고 서울로 올라가 만년의 벼슬살이를 했다. 당시는 선조 2년, 임금의 나이 겨우 17세였다. 여러 번에 걸친 출사 요청을 거부했던 퇴계였지만 어린 임금의 요청은 차마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우찬성, 판중추부사 등의 고위관직을 받고서 경연에서 강의하며 성심껏 보좌했다. 퇴계는 그해 12월 군왕의 도에 대해 설명한 ‘성학십도’를 편찬해 임금께 바치고는 누차 상소 끝에 임금으로부터 귀향을 허락받았다. 벼슬보다 학문의 완성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위대한 발자취, 경(敬)을 따르다’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말 그대로 퇴계의 경 사상을 돌아보는 순례길이다. 김 단장은 “스페인 산티아고 길도 좋지만 한류 나라 최고 학자인 퇴계의 삶을 돌아보는 현인의 길도 큰 의미가 있다”고 소개했다. 경 사상은 몸가짐을 가지런하게 하면서 자신을 엄숙하게 돌아볼 것을 권한다. 그는 “자연히 겸허하게 되고 배려의 마음을 갖게 된다”고 했다.

김 단장은 “퇴계는 은퇴 후 1년9개월 정도 더 살면서 삶을 잘 마무리했기에 오늘날까지도 존경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퇴계의 귀향을 ‘진퇴가 있는 처세’로 정의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만 좋아하고 물러나기를 꺼려하는 게 요즘 세태다. 평균 수명이 길어진 시대에 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는 좋은 모델”이라고 했다.

행사에는 일반인도 40명 가까이 참석했다. 전북 전주, 중국에서도 왔다. 중국 산둥대학 마엔차오 교수는 “한국에 연구조사차 왔다가 소식을 듣고 동행했다”고 말했다. 기획예산처 장관을 지낸 김 단장은 관직에서 물러난 후 퇴계에 대해 연구하면서 교양서 ‘퇴계처럼’을 낸 바 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