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가난과 불행 속에 살던 나 예수님 안에서 행복 누리다

입력 2019-04-15 00:04

나는 주변에 집 한 채 없는 산속 가난한 집 장녀로 태어나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늘 집안 물건을 던지며 싸웠다. 그 불안 속에서 어머니는 다섯 살인 나에게 여동생을 맡기고 일을 나가셨고 일곱 살 때는 아예 모든 살림을 내게 맡겼다. 물을 길어다 밥을 하고 소죽을 끓이는 힘든 일은 끝이 없었다.

그러다 귀한 남동생이 태어났지만 일찍 죽었고 나이가 돼도 학교에 보내주지 않아 나는 매일 눈물로 시키는 일만 했다. 그렇게 가난한 데도 아버지의 아들 욕심에 동생들을 계속 낳아 결국 아들 둘에 10남매가 됐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열세 살 때 객지로 떠나 방앗간 집에서 식모살이를 했다. 손발이 터지며 3년간 돈을 모아 집에 갖고 갔는데 아버지는 이틀 만에 그 돈을 몽땅 쓰고 돌아왔고 나는 또다시 돈을 벌러 나가야 했다.

열여섯 살에 힘든 광산에서 내 몸이 엉망이 되도록 억척 같이 일을 했지만 집에서 계속 돈을 요구하니 돈을 모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더 많은 돈을 찾아 강원도에서 멀리 강화도 섬으로 팔려갔다. 가족이 보고 싶었지만 가지 못하고 2년 동안 돈만 부쳤다. 글을 몰라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2년 만에 편지를 보내고 몇 년 만에 고향에 갔는데 부모님은 왜 왔느냐고 야단을 쳤다. 나는 돈 벌어다 주는 기계였지,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죽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일을 하다가 낫을 밟아 발뒤꿈치가 덜렁거릴 정도로 떨어져 나갔다. 흙으로 지혈을 하고 부엌에서 죽으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럴 바에는’ 하며 한 푼도 없는 열 살 위의 남자와 결혼을 했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 큰 형님 댁에서 한복 만드는 것을 배우며 일을 했다. 양조장에 다니던 남편은 아이를 낳았는데도 아무 관심이 없이 늘 고주망태가 돼 들어왔고 내 몸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어느 날 전도사님의 방문으로 처음 교회에 갔다. 기도원에서 방언도 받고 놀랍게도 아프던 몸도 깨끗이 치유되니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다.

아이들도 잘 자랐고 술, 담배, 노름에 빠졌던 남편도 마음을 잡았다. 여러 일에 실패한 남편은 택시회사에 들어갔고 우리 가족은 매일 감사하며 착하게 살았다. 그러다 다니던 교회에 문제가 생겨 감당하기 힘들어 쉬고 있을 때 큰 딸을 따라 춘천 한마음교회에 갔다.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나의 주인이 돼 주셨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그 말씀이 그대로 내게 임했다. 그러면서 내가 주인 돼 살았던 삶이 보였다. 제자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다고 했는데 그동안 나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음을 성령께서 비춰주신 것이다. 나는 바로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에 진짜 주인으로 모셨다.

가족도 놀랍게 바뀌었다. 택시영업을 하는 남편, 중학교에서 상담과 성경교사를 하는 큰 딸, 간호사인 작은 딸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겐 하나의 염려가 늘 남아있었다. 여러 번 큰 수술을 하고 악한 영을 보는 늦둥이 아들 때문이었다. 그렇게 염려를 하던 어느 날 주님께서 아들의 주인도 예수님이라고 하셨다. 그때서야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길 수 있었다. 아들은 공동체의 끝없는 사랑과 기도로 정상으로 회복됐다.

9남매를 키우시며 고생만 한 친정어머니도 예수님을 영접했고, 나를 힘들게 했던 분들도 용서가 됐다. 지금도 한글을 제대로 몰라 말씀을 읽기도, 간증을 기록하는 것도 어렵지만 모든 것을 나의 주인에게 맡기고 주님만 바라보니 감사만 나온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시고 인도해주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린다.

김관익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