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비행했던 대한민국 항공업계, 영욕의 변곡점 맞다

입력 2019-04-13 04:01
한국의 민간항공 역사가 올해로 50년이 됐다. 2011년 6월 ‘하늘을 나는 호텔’ ‘꿈의 비행기’로 불리는 대한항공 A380 항공기가 첫 운항을 앞두고 시험 비행을 위해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모습. 대한항공 제공

지금까지 이런 격변기는 없었다. 양대 대형 항공사 수장이 동반 퇴진했고, 항공업계 ‘큰어른’으로 통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타지에서 생을 마감했다. 저비용항공사(LCC)가 9개로 늘어나 무한경쟁이 예고된 시점에 업계를 이끌어온 두 대형사가 ‘반강제적’ 경영 쇄신에 나서게 됐다. 항공업계는 주주권 행사와 지배구조 개편, 항공사 간 인수·합병(M&A) 등 전인미답의 미래와 직면하고 있다.

혼란한 미래의 이정표는 대개 역사다. 1962년 국영 대한항공공사가 설립되고, 1969년 한진상사의 대한항공 인수로 첫 민영 항공사 시대를 연 이래 반세기를 훌쩍 넘긴 국내 항공업계는 크고 작은 부침을 반복하며 영욕의 발전사를 쌓아 왔다.


국내 항공업계의 출발은 1929년 신용욱이 설립한 조선비행학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1936년 조선항공사업사로 바뀌어 정기 운항에 나섰고, 광복 이후 1946년 미국 군정의 허가를 받아 대한국민항공사(KNA)로 재출범했다. 1962년 정부가 KNA를 인수해 대한항공공사를 설립했으나 만성 경영난에 민영화를 추진했고, 1969년 한진상사가 이를 인수해 현재의 대한항공이 출범했다. 현대적 의미의 민간 항공산업이 시작된 것이다.

1972년 4월 19일 대한항공 B707 여객기의 로스앤젤레스 첫 취항 모습. 대한항공 제공

대한항공은 1969년 보잉 720기를 국제선 노선에 투입하며 국내에 제트기 시대를 열었다. 1971년 하와이 호놀룰루와 로스앤젤레스 취항권을 획득, 현재까지 이어지는 주력 노선을 확보했다. 장거리 노선의 효과적 운용을 위해 ‘점보기’로 통하는 보잉 747기를 1973년 도입했다. 1975년 유럽 외 최초로 에어버스 여객기를 발주한 뒤 보잉 화물기와 맥도널더글러스 여객기로 파리행 유럽 항로를 운항하기 시작했다. 이 기간 1, 2차 오일쇼크로 글로벌 항공산업이 위축기를 맞았지만 공격적 항공기 도입과 투자로 본격 성장기를 열었다.

1980년대 중반까지는 대한항공의 독주체제였다. 이 시기 대한항공은 냉전시대의 비극이 낳은 소련 영공 007편 피격, 북한 테러에 의해 공중 산화한 858편 폭파 등 현대사에 기록된 비극을 잇달아 겪는다.

1988년 12월 23일 아시아나항공 국내선 첫 취항 모습. 국민일보DB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제2항공사 출범으로 변화의 시기가 도래했다. 전두환 정권의 제2민항 사업자 선정에서 금호그룹이 선정되고, 서울항공이 설립됐다. 서울항공은 같은해 8월 아시아나항공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12월 첫 국내선 취항에 나섰다. 초창기 보잉 737기 한 대로 국내선 전 노선을 커버했지만 이듬해 제주 노선 취항과 함께 꾸준히 기체를 도입했고, 복수 민항기 경쟁체제를 확립하려는 정부 방침과 맞물려 급격히 사세를 확장해갔다.

1989년 정부의 해외여행 자유화 시책 시행, 양사의 차별화 경쟁 등의 뒷받침으로 1990년대 국내 항공업계는 도약과 팽창의 시기를 맞는다. 김포공항 포화에 따라 1992년 인천국제공항 건설이 시작됐다. 냉전 종식 이후 국제선 노선 다변화, 양대 항공사의 견실한 성장과 더불어 두 건의 대형 추락사고가 국민들을 경악케 하기도 했다. 1993년 전남 목포 상공에서 추락한 아시아나항공 733편 사고와 1997년 대한항공 801편 괌 추락사고다.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 모습. 국민일보DB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넘긴 항공업계는 대한항공이 2000년 글로벌 항공동맹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하고, 2003년 아시아나항공 역시 또 다른 항공동맹 ‘스타얼라이언스’에 가입하면서 글로벌화에 박차를 가한다. 그 사이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2001년 새 관문 공항인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했다.

2005년 국내 최초 LCC 한성항공 운항 개시 모습. 국민일보DB

2000년대 중반부터는 ‘LCC 시대’가 본격화됐다. 국내 최초 LCC 한성항공(현 티웨이항공)이 2005년 운항을 개시했고, LCC 업계 1위로 자리매김한 제주항공이 같은해 첫 취항에 나섰다. 이후 2008년 진에어와 에어부산, 2009년 이스타항공, 2010년 티웨이항공, 2016년 에어서울까지 6개 LCC 시대가 확립됐다.

2018년 개장한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은 개장 200일 만에 1000만 여객을 돌파하는 등 업계 동반 성장이 확연했다.

반면 2014년 ‘땅콩 회항’으로 시작된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각종 사건·사고, 무리한 확장 경영으로 불거진 아시아나항공의 유동성 위기 등 암(暗)도 교차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부터 일련의 양 오너가(家) 비위가 불거졌고, 지난달 양사 주총을 전후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이 동반 퇴진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이어진 조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는 반세기 넘게 지속된 급성장의 시절이 저물었음을 알리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올해 초 결정된 9개 LCC 체제, 양사 경영권 승계에 따른 지배구조 변화 및 향후 M&A 가능성까지 다각도로 열려 있어 업계는 격동의 새 반세기, 중대한 변곡점과 마주하게 됐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