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벗고 나를 입다 “헬로! 프리랜서”, 외롭고도 치열한 창조적 미드필더

입력 2019-04-13 04:00
<그래픽=전진이 기자, 게티이미지>

#1. K씨(48)는 거의 20년째 프리랜서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단지 생계가 아니라 매우 윤택한, 그리고 매우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스물다섯 살 나이에 대기업에 입사해 겨우 3년 정도 일한 게 그가 직장생활을 한 전부다. 나머지는 혼자 일해 왔다. 정해진 월급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닥치는 대로 일하지도 않았다. K씨는 직장에 다닐 때부터 “이 길은 절대 아니다”란 말을 혼자 되뇌고 살았다. 그래서 자기가 혼자 잘할 수 있는 일이 뭔가를 수만 번 고민했다.

어릴 적부터 그의 취미는 음악감상이었다. 그냥 평범한 음악들은 아니었다. 클래식부터 프로그레시브록, 재즈에서 힙합까지 세상의 장르는 다 섭렵했다. 좋다 싶으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앨범을 사고 온 정성을 들여 보관해 왔다. 또 하나 K씨는 뭔가를 끌어모아 남들이 보기 좋게 정렬하고 묶어내는 데 타고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음악 서클에 들어가선 맴버들의 글과 소장 앨범, 감상평 따위를 묶어서 그들만 보는 무크 잡지를 펴냈다. K씨가 혼자 만든 이 무크지에 서클 멤버 전원이 감탄했다. 시중에 아무렇게나 뒹구는 잡지들보다 훨씬 수준 높은 그래픽과 사진, 편집으로 100여권 찍어낼 때마다 삽시간에 동이 났다.

K씨는 취미 하나와 자질 하나에다 직장생활의 경험을 얹었다. 그리고 그는 수시로 보고서를 쓰고 제안서를 만들며 프로젝트 기획서를 제출해야 하는 직장인들을 위한 문서작성 전문가가 되기로 했다. 수평적이고 평면적이며 누가 읽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사무적인 문서를 한 번 읽고 보고 들으면 모든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노하우를 전수하기로 한 것이다.

첫해부터 K씨는 대박을 쳤다. 중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그를 부르느라 난리통이었다.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창작음악의 세계를 조용히 감상하던 그는 이 음악의 틈에서 세상과 사물을 새롭게 보는 방법을 배웠고 이를 자신의 문서작성법에 응용했다. 그가 컨설팅한 기업들의 제안서와 보고서, 기획서는 몇 마디 글과 제목, 시각적 효과로 조직 상위층의 눈을 사로잡았다. 몇 천만원에 불과했던 직장인 시절의 연봉은 프리랜서 첫해부터 억대로 올라섰고, 요즘은 10억원대까지 치솟았다.

#2. P씨(40·여)는 지방대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영양사 자격증을 딴 뒤 종합병원 식당 영양사로 일했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는 어려운 집안사정 때문에 자신이 건사해야 했던 동생들 학비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싸지만 스타일리시한 옷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영양사로 5년 일하는 동안 모은 1000만원으로 인터넷 쇼핑몰을 차렸다. 혼자 서울 동대문 도매상가에 가서 팔아야 할 옷들을 헌팅하고, 혼자 이 옷들을 입고 쇼핑몰 사이트에 디스플레이하는 모델 일도 하고, 고객들이 구매한 옷을 포장해 택배로 부치는 일까지 모든 걸 혼자 다했다.

첫해 쇼핑몰에서 팔린 옷은 고작 1000만원어치가 안 됐다. 사실상의 적자였지만, 작은 키에 가냘픈 P씨는 대담한 심장으로 은행에서 5000만원을 대출받아 쇼핑몰 규모를 더 키우고, 사진작가를 고용해 자신을 모델로 삼아 시장패션을 쇼핑몰 사이트에 디스플레이했다. 동대문 시장패션 원가와 사진 촬영비용 등으로 거의 대출금을 다 썼다. 그런데 그때부터 쇼핑몰에 여성 고객들이 몰려들었다. 10만원 내외의 원피스, 투피스 정장, 블라우스, 치마, 코트 같은 시장패션이 날개돋친 듯 팔려나갔다. 두 번째 해 매출액은 2억원이 넘었고, 그 다음해가 되자 5억원을 넘었다. 쇼핑몰을 연 지 5년째가 되자 1년 매출액이 35억원으로 불어났다. 30대 중반에 P씨는 ‘100억 소녀’란 별명을 얻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인터넷 쇼핑몰 운영 사무실에 앉아 온라인으로 옷을 팔고, 밤 12시가 되면 동대문 평화시장과 신평화시장을 누비며 옷을 도매로 구입했다. 주말엔 새로운 패션을 차려입고 사진작가를 불러 디스플레이용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프리랜서로 출발해 잘나가는 인터넷 쇼핑몰 창업자가 된 것이다.


21세기는 프리랜서 시대

세계 경제와 문명의 흐름을 읽는 학자들이라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21세기는 프리랜서의 시대”라고 규정한다. 개인보다 조직이 더 큰 힘을 발휘하고 더 큰 경제력을 얻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과 학교 등 각종 조직은 더 거대해지고 있지만 거대해진 만큼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한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경쟁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바로 거대 조직들의 새로움 추구로 인해 프리랜서의 역할은 더 커진다. 어떤 조직도 스스로 겪어보지 못한 새로움을 조직 내부에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 내부에는 새로운 시도와 모험,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구성원을 발견하기 어려워서다. 그러니 전혀 가보지 않았던 길을 걷는 프리랜서들을 조직 내부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번역가 출판기획자 성우 방송작가 통신작가 카피라이터 북디자이너 시나리오작가 큐레이터 메이크업아티스트 내레이터모델 보석감정사 컴퓨터속기사 만화가 웹디자이너 같은 프리랜서 직업군은 이미 이전 시대의 프리랜서가 된 지 오래다.

이전 시대라면 기업 내부 구성원으로 채워졌던 상품기획 전략가, 홍보전략 전문가, 보고서 작성 전문가, 마케팅디렉터, 패션트렌더 등도 프리랜서들로 채워지고 있다. 특정한 조직문화에 길들여져 머리가 굳은 조직 구성원보다 탁월한 상상력과 아이디어, 과감한 결정력으로 무장한 프리랜서들이 더 높은 성과를 내기 때문이다. 대기업들도 전문적 능력을 지닌 프리랜서를 임원보다 훨씬 더 높이 평가하게 됐다. 오직 자기 자신만의 개성과 감성, 판단력으로 견고하게 직업의 세계를 구축한 프리랜서들은 앞으로 더 각광받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인간의 복잡한 두뇌 활동으로 이뤄지던 수없는 복합 작업들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고 있지만 그럴수록 새로운 직군의 프리랜서들은 더 많은 직군에서 탄생할 것이란 예견도 존재한다. 사물인터넷이 만개하는 5G 시대에 필수적인 로봇 기술 및 제어 전문가, 프로그래밍 전문가 등 기술직에서도 새로운 프리랜서들이 각광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화려함 뒤엔 쉼 없는 쓸쓸함

K씨가 20년 넘게 문서작성 전문가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느슨하게 생업의 나사를 풀고 살 수는 없다. 한번 도태되면 아무도 찾지 않는 ‘놈팽이’가 될 개연성이 계속 성공한 프리랜서로 남는 경우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또 하나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번 돈을 어떻게 적절하게 배분해 쓸 것인지, 번 돈을 새로운 사업 구상에 투자할 것인지 아니면 저죽할 것인지 등 모든 걸 혼자 결정하고 판단해야 하는 ‘심각한’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P씨는 바로 이 ‘모든 걸 혼자 해내야 하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 ‘100억 소녀’의 길을 얼마 전 접었다. 스마트폰과 SNS가 없던 시절엔 오직 자신의 인터넷 쇼핑몰 안에서만 홍보하고 판매해도 옷이 불티나게 팔렸지만 지금의 인터넷 쇼핑 패턴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도 끊임없이 SNS 친구를 만들고 홍보 전략을 구사해야 하며 딱 한 단어로도 스마트폰에서 검색돼야 구매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이버 세상의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P씨는 또 10년 동안 일에 치여 돈만 벌던 자신에게 회의감도 깊게 느꼈다고 한다. 쓸쓸하게 돈벌이에만 매달리다 휴식도 휴가도, 정신적 여유도 없이 지나가버린 시간을 더 감당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너무 경쟁이 치열해서 며칠만 한눈을 팔아도 살아남을 수 없는 게 프리랜서 일 같아요.”

“혼자 일할수록, 일이 잘될수록 더 다른 사람과 협업해야 하죠. 내가 못 하는 건 나를 도와줄 다른 사람을 찾아 도움을 청하고, 그 도움에 감사할 줄 알아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K씨와 P씨의 말에 묻어 있는 고민은 프리랜서란 직업의 숙명 같은 것일지 모른다.


프리랜서;
일정한 집단이나 회사에 전속되지 않은 자유기고가나 배우 또는 자유계약에 의하여 일을 하는 사람. <네이버 두산백과>

신창호 토요판팀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