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폼페이오·볼턴 ‘매파 2인’ 만난다

입력 2019-04-09 18:45 수정 2019-04-10 00:10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1박3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다. 정상회담에 앞서 북·미 실무협상을 책임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하노이 노딜’을 주도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보좌관도 별도로 접견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파국 위기에 처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중대 분수령을 맞고 있다.

이번 긴급 방미의 성패는 일괄타결론, 이른바 ‘빅딜’을 주장하는 미국과 단계적 접근을 요구하는 북한 사이에서 문 대통령이 어떤 절충안을 관철시키느냐에 달려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밝힌 ‘굿 이너프딜’(충분히 괜찮은 합의), 특정 현안의 우선 합의를 의미하는 조기수확론(Early harvest) 등이 정부 구상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9일 “중요한 포인트는 완전한 비핵화의 최종 상태(end state), 이를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의 필요성에 한·미 간 의견이 일치한다는 점”이라며 “두 정상 간에 이런 부분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미 양측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로드맵 필요성에 공감했다는 발언이 주목된다. 미국이 일괄타결 대신 단계적 보상 절차를 담은 로드맵 구축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카드로 제안했던 영변 핵시설 폐기·검증 문제, 문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제안했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등이 로드맵의 한 부분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정상 간 논의할 문제를 미리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고, 우리가 협상 재개를 원한다는 걸 강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톱다운 방식이 유지되면서 제재의 틀도 유지돼야 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과 함께 대표적 대북 강경파로 분류되는 볼턴 보좌관을 만나는 점도 주목된다. 지난해 북·미 협상 과정에서 소외됐다가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볼턴 보좌관은 미국의 대북 강경태세 전환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은 볼턴 보좌관에게 향후 북·미 대화 재개에 건설적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의 방미 기간 북한도 메시지를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11일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위 변화와 함께 한반도 정세에 대한 발표가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의 경우 오후 8~9시쯤 북한 매체를 통해 회의 결과를 발표했던 만큼 12일(한국시간) 새벽에 진행되는 한·미 정상회담 논의 내용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청와대는 여러 변수를 감안해 다양한 한·미 정상회담 시나리오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실패라기보다 하나의, 긴 호흡의 프로세스”라며 “각 당사국이 어떤 요구를 했고, 어떤 방안으로 필사적으로 협상해야 하는지 알게 된 좋은 계기”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북·미의 신뢰를 가진 사람은 문 대통령”이라며 “이번에도 우리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정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상반기 내 방한 문제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춘추관 브리핑에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대화의 동력을 조속히 되살려야 한다는 공동 인식을 바탕으로 개최된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오후 워싱턴에 도착, 영빈관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이어 11일 오전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 볼턴 보좌관을 만난 뒤 낮 12시쯤부터 정상회담과 업무오찬을 진행한다. 방미길에 동행하는 김정숙 여사는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단독 오찬이 확정됐다. 한·미 정상 부인이 단독으로 오찬을 하는 것은 1989년 이후 30년 만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