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학기 高3부터 무상교육… 교육청 절반 부담 ‘불씨’

입력 2019-04-10 04:01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9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고교무상교육 시행 당정청 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조정식 정책위의장, 유 부총리,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 뉴시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고교무상교육 재원 마련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올해 2학기부터 고교 3학년을 시작으로 무상교육을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지난해 발표했다. 그러나 재원 조달 계획을 내놓지 않아 실현 가능성에 의문 부호가 찍혔었다. 정부와 여당, 시·도교육청이 합의한 이번 방안이 야당 동의를 받아 국회 문턱을 넘으면 2021년부터 고교 학부모들은 입학금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서대금 부담이 사라진다.

정부와 여당은 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당정청 협의를 갖고 ‘고등학교 무상교육 실현방안’을 발표했다. 고교무상교육을 위해 매년 필요한 돈 2조원을 누가 부담할지가 핵심이다. 그동안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내국세의 20.46%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을 높이는 방안을 주장했다. 예산 당국은 세금이 많이 걷혀 현재 시·도교육청 예산이 넉넉하기 때문에 국고 투입이나 교부율 인상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일단 올해 2학기 고3의 경우 전액 시·도교육청이 부담키로 했다. 내년부터 2024년까지 5년 동안은 정부와 시·도교육청이 5대 5로 부담을 나눈다. 정부는 고교무상교육이 전면 시행되는 2021년부터 필요 예산의 47.5%를 ‘증액교부금’ 방식으로 지원한다. 증액교부금이란 부득이한 수요가 있을 경우 국가 예산에서 별도로 지원하는 돈이다. 내국세 일부를 자동적으로 떼어내 시·도교육청에 내려주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차이가 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여당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을 추진한다.

지방자치단체가 5%를 부담하고 나머지 47.5%는 시·도교육청이 부담한다. 이번 방안대로라면 2021년에 고교 전 학년 무상교육이 시행되면 연간 1조9951억원이 소요되는데 시·도교육청이 9466억원을 부담하게 된다. 교육부는 이미 시·도교육청들과 협의했다는 입장이지만 일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3944억원, 경기도는 4866억원이 필요하다.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올해 2학기 고교 3학년 부분은 지금 재정 여건에서 감당 가능하다. 그러나 전면 도입돼 오늘 발표처럼 국가와 교육청이 절반씩 부담하게 되면 교육력을 높이는 재정 부분이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교부율을 인상해 안정적으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은 변화 없다”면서도 “지금 합의하지 않으면 고교무상교육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으니 이 정도 선에서 가되 누리과정 때처럼 (교육청에) 떠넘기는 방식이면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2025년부터 재원 조달을 어떻게 할지도 문제다. 5대 5로 한시적으로 봉합했지만 차기 정부와 교육감 성향에 따라 변수가 많다. 현재 정부와 시·도교육감들은 진보성향이어서 코드가 맞는다. 코드가 맞아도 합의에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방안도 일부 시·도에서 반발하는 등 합의가 불완전한 상태로 전해졌다.

만약 2024년 이후 정치 지형이 달라지고 세금이 충분히 걷히지 않아 정부와 시·도교육청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과거 누리과정 예산 파동이 재연될 수 있다. 박근혜정부는 2016년 누리과정을 시행하면서 유치원·어린이집 지원금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부담토록 했다가 시·도교육감들이 반발해 ‘보육 대란’ 우려가 증폭됐다. 당시에도 예산 당국의 예상보다 세금이 덜 걷히면서 시·도교육감 반발이 거셌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교부율을 높여 안정적으로 재원을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예산 당국의 완강한 반대에 밀렸다. 결국 차기 정부와 시·도교육감들에게 떠넘기는 ‘미봉책’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학부모 부담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줄어들지도 의문이다. 정부는 학생 1인당 연 160만원의 부담을 줄여준다고 주장한다. 월 13만원가량 가처분소득 증가 효과가 있다고 추산한다. 그러나 이미 저소득층 가정은 고교를 무상으로 다니고 있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자녀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실질적 혜택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영세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등이다. 사교육 경감 대책과 맞물리지 않으면 사교육만 좋은 일 시킬 것이란 관측도 있다. 사교육비 부담이 매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학부모의 가처분소득이 올라가면 그 돈을 어디다 쓰겠느냐는 것이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