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에는 소 10마리, 2000년에는 집, 그리고 올해는 산불로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그런데 나라에선 어머니가 이번 산불 피해자가 아니랍니다.”
지난 4일 강원도 고성산불 당시 숨진 박석전(70·여)씨 유족들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9일 강원도와 유족 등에 따르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당초 지난 5일 박씨를 포함해 산불 피해 사망자를 2명이라고 했다가 이후 산불 피해 발표 시 박씨를 제외하고 사망자를 1명으로 발표했다. 산불이 아닌 강풍에 의한 죽음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유족들은 “마을에서 한 산불 대피 준비 방송을 듣고 집을 나섰다가 강풍에 날아온 물체에 맞아 숨졌는데, 왜 산불 피해자가 아니냐”며 반문하고 있다. 삼포2리 마을이장 함형복(73)씨는 지난 4일 토성면 일원에 산불이 빠르게 번지고 재난문자가 이어지자 같은 날 오후 9시2분쯤 산불 대피 준비를 알리는 마을방송을 했다. 방송 이후 마을 대피소인 마을회관으로 향하던 마을 주민들은 오후 10시30분쯤 골목에 쓰러져 있던 박씨를 발견, 119에 신고했지만 끝내 숨졌다.
유족과 마을 주민들은 친정어머니(94)와 함께 생활하고 있던 박씨가 방송을 듣고 대피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마을회관으로 가던 중 참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고 당시 마을에는 전봇대에 부착된 반사경과 도로 이정표, 함석지붕을 날려버릴 만큼 강한 바람이 불었다. 경찰은 사고 현장에서 박씨의 혈흔이 묻은 도로 이정표와 함석지붕 등이 발견된 점으로 미뤄 강풍에 날아온 구조물에 박씨가 맞아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씨의 딸 안모(45·여)씨는 “1996년 고성산불로 축사가 불에 타 소 10마리가 죽었고, 2000년엔 동해안 산불로 집이 다 타버려 어머니는 산불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며 “이런 상황에 어머니가 마을방송을 듣고 상황을 살피려고 집 밖을 나섰다가 참변을 당했는데 왜 산불 피해자가 아니냐”고 항변했다.
함 이장은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두 차례 큰 산불 피해를 입어 산불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며 “겁을 먹은 상황에서 산불 방송을 듣고 집 밖에 나왔다가 참변을 당한 만큼 당연히 산불 피해자 집계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고성=서승진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