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에서] 산불 피해지역으로 여행을

입력 2019-04-13 04:01

강원도에 산불이 났을 때 워낙 강풍이 심해 진화가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초속 30m가 넘는 강풍이 불었다. 4~5월에 양양과 간성(고성) 사이에 부는 악명 높은 양간지풍이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13시간 만에 조기 진화됐다. 강원도 소방인력만으로는 진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소방청은 화재 발생 1시간 반 만에 최고 대응태세 3단계를 발령했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소방차들이 총출동했다. 지방에서 강원도로 향하는 소방차들이 경광등을 켜고 밤새워 고속도로를 달렸다. 마치 전쟁이 나자 전국에서 지원병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일제히 전쟁터로 향하는 듯한 광경을 연상케 했다. 동영상 등으로 이 장면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다. 화재 지역으로 달려온 소방차가 872대였고 소방헬기도 51대가 투입됐다. 소방관 3200여명이 출동했다. 단일 화재 사상 가장 많은 인력과 장비다.

소방관들 뿐만 아니라 민관군이 마음을 모았다. 펜션 등 숙박업소들은 이재민들에게 무료로 방을 내줬다. 택시와 배달 오토바이들은 화재가 난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주민들의 대피를 도왔다. 교직원들은 평소 훈련한대로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킨 뒤 학교에서 밤새 소방호스를 들고 불길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각 기관 관계자들은 폭약 같은 위험물이나 중요 기록물 등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주유소와 LPG충전소를 위험을 무릅쓰고 지켰다.

전국 각지에서 성금과 자원봉사도 줄을 잇고 있다. 임시 대피소는 전국에서 달려온 봉사차량과 봉사자들로 붐비고 있다. 정부도 고성군·속초시·강릉시·동해시·인제군 5개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임대주택과 연수원 등을 임시 거처로 제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화재 현장을 찾았다. 임기를 하루 남긴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임식을 취소하고 현장으로 달려가 임기 마지막날까지 일을 하다 진영 후임 장관에게 업무를 인계한 것도 현명한 판단이다. 우리 재난 역사상 이렇게 민관군이 한마음으로 대응했던 적이 드물다. 두고두고 재난에 잘 대처한 모범사례로 꼽힐 것이다. 재난은 전쟁과 유사하다. 전쟁을 군인들에게만 맡길 일이 아니듯 재난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민간이 힘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화마의 상처는 깊다. 식목일 전날 발생한 이번 화재로 여의도 면적의 3배가 넘는 1757㏊(17570만㎡)의 산림을 잃었다. 400여채의 주택과 900여곳의 축산·농업시설도 불에 탔다. 수백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000년 산림 2만3000ha를 태운 동해안 산불이나 2006년 4월 낙산사 등을 태운 양양 산불보다 규모는 적지만 주민들의 피해가 컸다. 생계수단을 잃거나 관광 수입이 감소하는 등의 2차 피해도 예상된다. 정부와 지자체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국민들이 이들 피해 지역을 도와줄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다. 이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다. 이들 지역은 매우 인기 있는 여행지다. KTX 경강선을 타면 서울에서 강릉까지 100분 만에 도착한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까지 생겨 접근성이 뛰어나다. 계절을 가리지 않고 갈 수 있는 명소들이 많다. 명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다.

혹시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으로 관광을 가는 것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다. 이곳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 피해 지역 주민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이번 여름휴가를 설악산과 주변 바닷가로 가야겠다. 혹시라도 산불 피해를 입었던 식당이나 가게가 영업을 하고 있다면 이용해 볼 생각이다.

신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