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비행기로 1시간을 간 뒤 다시 차로 1시간30분을 달리면 끝없이 솟아오른 고산지대를 마주하게 된다. 고산지대 위에 펼쳐진 가파른 비탈길을 자동차로 굽이굽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서서히 숨이 가빠진다. 해발 2600m에 위치한 훌라(Hula) 지역으로 가는 길이다.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과 훌라 주민들은 8년째 위생·영양·아동보호 등의 사업을 진행하면서 더 나은 삶을 모색하고 있다. 월드비전이 결연한 아이들만 4200여명이다. 국민일보는 손윤탁 서울 남대문교회 목사와 함께 지난달 3일부터 8일까지 사업장 일대를 둘러봤다.
현지 스태프를 만난 손 목사는 ‘아이들이 가장 많은 곳부터 가자’고 제안했다. 학생 60여명과 교사 10여명이 손 목사를 반갑게 맞았다. 학생들은 ‘환영한다’ ‘축복이 있기를’이라는 뜻이 적힌 피켓을 들고 환호했다.
손 목사는 젊은 시절 교사로 일했던 경험을 꺼내놨다. 그는 “월드비전이 폐허가 된 한국을 도울 때 나도 초등학교 학생이었다”면서 “그때 내게도 꿈이 있었다. 각자 품고 있는 꿈이 무엇인지 일일이 알지 못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 함께 기도하자”며 축복했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쳤다. 구석에 있는 1학년 학생들은 “총리가 되고 싶다”는 피켓을 흔들기도 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 학업을 잘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을 돕는 청년들도 찾았다. 지난 2월 중등학교를 졸업한 알마사 서퍼(18)양과 츠가이 마르코스(18)군은 매주 토요일 동네 주민의 집을 빌려 초급학교 학생 30명에게 글자와 기초적인 사칙연산을 가르친다. 마르코스군은 “초급학교에 다닐 때, 비가 오면 수업을 하지 못했지만 6년 전 월드비전과 주민들이 함께 콘크리트로 학교를 지은 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며 “그때 받은 도움을 나누고 싶었다”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손 목사는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도 찾았다. 베들레헴 아옐레(7·여)는 1년 넘게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다. 어머니는 죽고 아버지는 3년 전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할머니 알마즈 아옐레(64)씨가 집 한 칸을 흙으로 막아 만든 방에서 받는 월세와 조그만 텃밭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베들레햄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는 산기슭 아래에 있는 샘물에서 물을 떠오는 일이다. 하루 세 번 동생 바레캇(4)과 함께 노란색 물통을 들고 비탈길 2㎞를 왕복한다. 이날은 손 목사가 베들레햄과 동행했다. 손 목사의 오른손을 잡은 베들레햄은 연신 돌 사이를 뛰어 내려갔다.
물을 길어 집에 온 베들레햄은 깜짝 선물을 받았다. 손 목사가 한국에서 준비한 가방을 건넸다. 가방 안에는 학용품과 스케치북, 공책들이 들어 있었다. 손 목사는 “학교에 가고 싶을 나이에 일을 시작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며 “1년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학교에 갈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두 손으로 가방을 껴안은 베들레햄에게 공부를 왜 하고 싶냐고 물었다. “의사가 돼 할머니를 고쳐주고 싶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손 목사는 베들레햄의 꿈이 이뤄지기를 기도했다.
함께 가난을 이겨내는 현장도 찾았다. 2014년부터 월드비전과 지역주민들은 병충해에 강한 씨감자를 지역에 보급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없는 품종을 개발해 생산성을 크게 높였다. 동행한 월드비전 스태프는 “훌라 지역은 지대가 높아 감자 재배에 특화된 곳이지만, 좋은 품종이 없어 수확량이 많지 않았다”며 “씨감자 사업을 하면서 주민들의 소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수확한 감자의 일부를 씨감자로 만들어 보관한다. 카이 에투(50)씨는 새 감자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9남매를 모두 학교에 보낼 결심을 했다. 에투씨는 “예전에는 감자를 재배해도 절반 정도밖에 내다 팔 수 없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됐다. 월드비전은 단순히 좋은 품종의 감자만 준 게 아니라 비료사용법이나 퇴비활용법 같은 영농기술도 가르쳐준다”며 씨감자를 들어 보였다. 훌라 지역에서 감자 농사를 시작한 이들은 5500여명이다.
사업장을 둘러본 손 목사는 유난히 ‘희망’이라는 단어를 자주 썼다. 한국인들이 에티오피아에 대해 갖고 있던 ‘가난’ ‘절망’ 같은 선입견도 사라졌다고 했다. “절망의 나라가 아니라 희망의 나라가 돼가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조금만 더 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면 좋겠습니다.”
▒ 변화하는 에티오피아
안정된 시바 여왕의 나라 복음 다시 꽃피고 있다
에티오피아가 다시 일어서고 있다. 에티오피아는 1974년 사회주의 쿠데타로 셀라시에 왕정이 무너진 뒤 내전에 시달렸고 소말리아 등과 군사 분쟁도 겪었다. 73년과 84년에는 대기근이 발생해 수백만명이 숨졌다. 하지만 2010년부터 사회가 안정되면서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2017년 에티오피아의 경제성장률은 10.8%였다.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수치다. 지난해에는 여성 대통령도 당선됐다.
손윤탁 서울 남대문교회 목사는 훌라 사업장에서 아디스아바바로 돌아가는 길에도 주변 풍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손 목사는 “도로와 건물을 새로 짓고 자동차가 사람을 가득 태우고 다니는 풍경에서 90년대 사진으로 봤던 에티오피아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최근까지 ‘가난한 나라의 대명사’라며 에티오피아에 대해 설명한 게 모두 잘못됐다”고 말했다. 지역 목회자들과 만난 자리에선 에티오피아의 재복음화에 대해 물었다. 70년대 사회주의 쿠데타 이후, 정부는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의 선교를 금했다.
현지 목회자들은 “사회주의 정부 아래에서도 비밀리에 예배를 드렸다”며 “88년 민주화 이후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가뭄과 가난이 줄어들고 있다”고 전했다. 손 목사는 “솔로몬과 교류했던 시바 여왕의 나라가 복음을 잃었다가 되찾은 역사 자체가 성경의 교훈을 함축하고 있다”면서 “복음에 소홀해지는 한국이 잊지 말아야 할 나라”라고 말했다.
훌라(에티오피아)=글·사진 황윤태 기자 trul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