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과 유럽연합(EU)이 장관급 회담을 갖는다. 한국 측은 철강 수출을 제한하는 ‘세이프 가드’ 조치 해제 등 현안 해결에 주력할 방침이다. 반면 EU는 한국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맞붙는 지점이 모두 민감한 사안이라 협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는 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제8차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무역위원회’를 개최한다고 8일 밝혔다. 유명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통상집행위원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한다. 2011년 7월 발효한 한-EU FTA의 이행상황을 점검하는 동시에 통상 현안을 다룰 예정이다.
정례 회동이지만 앞서 열렸던 1~7차 무역위원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철강’이 걸려 있어서다. EU는 미국이 수입산 철강에 관세를 부과한 이후 보복 조치로 철강 수입 물량을 제한하는 내용의 세이프 가드를 발동했다. 지난 2월 2일부터 26개 수입 철강 품목에 적용 중이다. 한국도 냉연, 전기강판 등 11개 품목이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
이에 한국 정부는 지난 2일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EU산 제품에 5681만 유로(약 730억원) 규모의 ‘양허정지’를 예고하며 보복 수순에 들어갔다. 양허정지란 낮추거나 없앤 관세를 다시 부과하는 것이다. 이를 협상 카드로 써 세이프 가드를 풀겠다는 복안이 담겨 있다.
정부가 강수를 두면서 맞대응하고 나선 이면에는 한국 기업의 상황이 맞물려 있다. EU 현지에 공장을 둔 국내 자동차·가전 기업의 국산 철강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여기에 더해 한국산 중대형 상용차 승인과 관련된 규제 완화를 요구할 예정이다. 원료 의약품 수출 서면 확인서 면제, 삼계탕 수출 허용도 요청할 생각이다.
이런 한국에 맞서 EU는 ‘노동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기도 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말스트롬 위원장은 무역위원회를 열기 전에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을 면담한다. 무역위원회를 마친 뒤 내외신 기자회견도 예고했다. 한-EU FTA 합의문에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만큼 한국의 ‘이행’을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 관계자는 “말스트롬 위원장이 노동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국 측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고 노·사·정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결과물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말스트롬 위원장이 비준 촉구를 위해 전문가 패널을 소집할 개연성이 높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문가 패널이 구성되면 90일 이내에 권고안이 나온다”며 “이후 양국 간 추가 협상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