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그린, 거침없는 GO… 고진영 LPGA 메이저 ANA 우승

입력 2019-04-08 20:16
고진영(가운데)이 8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 미라지의 미션 힐스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한 뒤 매니저, 캐디와 함께 포피스 폰드에 뛰어들고 있다. AP뉴시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 미라지의 미션 힐스 컨트리클럽에는 ‘포피스 폰드(Poppie’s pond)’라는 작은 연못이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메이저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을 한 선수는 이곳에 뛰어드는 전통이 있다.

8일(한국시간) 이 연못에 뛰어든 선수는 고진영(24)이었다. 고진영은 “5년 전부터 이 대회 우승을 꿈꿨다. 연못에 다이빙하는 장면을 계속 그려왔다. 그 날이 오늘”이라고 웃었다.

고진영이 ‘호수의 여왕’에 등극했다. 올 시즌 가파른 상승세에 메이저대회까지 정복한 고진영은 LPGA에 자신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호수의 여왕’은 이제 ‘골프의 여왕’ 등극식만 앞두게 됐다.

고진영은 대회 마지막 라운드에서 버디 5개, 보기 3개를 쳐 2언더파 70타를 기록했다. 최종합계 10언더파를 친 고진영은 이미향(26)을 제치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생애 첫 메이저대회 우승이다. 한국 여자 선수로는 5번째로 이 대회 우승이다. 또한 지난달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에서 우승한 후 2주만이자 통산 4번째 우승을 거머쥐었다.

1타차 1위로 최종라운드를 시작한 고진영은 16번홀(파4)에서 까다로운 버디 퍼트를 성공해 이미향과의 격차를 2타로 벌렸다. 이어 마지막 18번홀(파5)에서 침착하게 버디를 잡아내 최종 우승을 확정지었다. 고진영은 버디 퍼트가 들어가는 순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매니저, 캐디와 함께 연못에 풍덩 빠졌다.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는 고진영. 올 시즌 가파른 상승세에 메이저대회까지 정복한 고진영은 LPGA ‘대세’가 됐음을 알렸다. AP뉴시스

고진영은 시즌 첫 메이저대회까지 정복하며 자신이 올 시즌 LPGA ‘대세’임을 만천하에 알렸다. 지난해 LPGA 투어에 데뷔한 고진영은 2년차 징크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올 시즌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올 시즌 6개 대회에 출전해 메이저 1승을 포함해 2번 우승, 2번 준우승, 3위 한 번을 기록했다. 대회에 출전했다 하면 우승을 다투고 있는 것이다. 올 시즌 LPGA 투어에서 멀티 우승을 차지한 선수도 고진영이 처음이다.

기록을 봐도 화려하다. 우승 상금 45만 달러(5억1000만원)를 받아 시즌 상금 100만 달러(100만2723달러)를 가장 먼저 돌파했다. 지난주까지 3위였던 평균 타수 부문에서도 68.75타로 1위에 올랐다. 올해의 선수 포인트도 1위다. 여기에 세계랭킹 1위 등극도 사실상 예약했다.

고진영이 지난해와 가장 달라진 점은 퍼트다. 고진영은 올 시즌 달라진 골프 규정에 따라 깃대를 꽂고 퍼트를 하고 있다. 그러자 퍼트 기록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고진영은 지난해 라운드 당 퍼트 수가 29.92개로 하위권인 91위에 머물렀다. 그런데 올해는 14위(29.20개)로 껑충 뛰었다. 그린 적중 시 평균 퍼트 수도 지난해 23위(평균 1.778개)에서 올해는 1.70개로 4위를 달리고 있다. 고진영은 “깃대를 꽂고 퍼팅을 하면 마음이 더 편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해와 비슷한 ‘송곳 아이언샷’도 여전하다. 지난 시즌 그린 적중률 1위(77.0%)였던 고진영은 올해도 80.28%로 4위에 올라 있다.

심리적으로는 멘탈이 더 강화됐다. 우승에 대한 중압감을 잘 극복하고 있다. 고진영은 “나 스스로도 이번 대회가 메이저가 아니라 다른 대회와 똑같다고 스스로 세뇌를 시켰다. 긴장감이 높아지면 샷이 달라지기 때문에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고 소개했다.

고진영은 끝으로 이번 대회 우승을 지난해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에게 바친다고 했다. 고진영은 “아마 살아계셨다면 기뻐하시며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라고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