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강원도 고성과 인제, 강릉 3개 지역에서 동시에 발생한 산불로 여의도 면적의 2배나 되는 산림이 이틀 만에 사라졌다. 원인이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한 전신주 고압선에 바람을 타고 날아온 이물질이 걸리면서 발생한 ‘아크(불꽃)’로 화재가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계기로 고압전선 화재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당장 거론되는 방안은 전선을 땅에 매설하는 지중화(地中化) 작업이다. 물리적으로 고압선과 이물질이 접촉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현재 지상 배전보다 10배 이상 드는 막대한 비용이 문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지중화용 변압기는 1대당 1000만원, 개폐기는 1대당 3000만원 수준의 비용이 든다. 일반 전봇대용 변압기와 개폐기가 각각 100만원, 300만원 정도인 것을 고려하면 설비 비용만 10배다. 여기에 땅을 뚫는 비용까지 더하면 천문학적 수준으로 지출이 늘어난다.
게다가 지중화 비용은 지방자치단체와 한국전력공사가 50대 50으로 부담하는데 일부 지자체를 제외하면 지중화 사업에 막대한 돈을 쓸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전기업계 관계자는 “전선 아크로 산불이 발생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며 “이번 산불을 계기로 대대적인 지중화 작업을 하자는 주장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전문가들은 지중화에 쓸 돈으로 화재 감시 시스템과 장비를 보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산불 진화에는 헬기가 가장 유용한데 예산 지원이 적다”면서 “정부가 예산 편성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드론과 무인 감시카메라 활용, 방화 수림대 조성도 효과적인 대책으로 거론된다.
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소방 인력의 신속한 접근이 어려운 산간 지방 일부라도 별도 예산을 투입해 지중화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지난해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때 미관 개선을 이유로 강원도 평창 인근 전선 지중화에 국비가 투입된 바 있다.
한전은 인구가 밀집한 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지중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배전선로의 지중화율은 서울시가 58.6%로 가장 높았다. 이어 대전 54.4%, 부산 40.5%, 인천 38.1% 순이었다. 반면 강원도는 8.4%에 불과해 경북(6.3%)과 전남(7.9%), 충북(9.3%)과 함께 최하위권에 그쳤다.
주요 도심의 지중화율마저 여전히 절반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당장은 한전의 설비 점검 예산을 늘려 전국적으로 점검 주기를 줄이는 게 화재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전이 설비의 이상 여부를 확인하고 수선하는 계획수선비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는 484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892억원이 늘었다. 하지만 이보다도 예산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개폐기와 전선 사이 연결 부위가 손상됐다면 이번처럼 아크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한전의 계획수선비를 대폭 증액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