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방치’ 수준인 한·일관계… 정부는 대안 있기나한가

입력 2019-04-09 04:02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외국인 투자기업 간담회에서 일본 기업인을 향해 “경제적 교류는 정치와 다르게 봐야 한다”고 했다. 한국 측에서는 ‘정경분리’ 입장을 밝힌 거라고 했지만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었다는 점에서 원론적인 견해 표명아니냐는 말이 나올 법했다. 다음 날 일본 정부 대변인은 ‘예상대로’ “일본의 기본입장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 대통령의 정경분리 발언을 공개적으로 반박한 것이다.

그동안 양국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더라도 지켜온 ‘기본선’이 있었다. 정치적 갈등이 커지더라도 경제 협력과 민간 교류는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한다는 정경분리 원칙이다. 그런데 이 원칙이 허물어지고 있다. 작년 11월 대법원의 징용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일본 정부 일각에서 “대(對)한 경제 보복” 목소리가 나오더니 연례 경제계 교류 행사가 잇따라 취소됐다. 최근에는 일본 기업과 거래하는 한국 기업이 통관 및 결제지연으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일본 국세청이 일본에서 사업 중인 한국 업체에 대해 표적 세무조사를 한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만 해도 그렇다. 판결이야 그렇다 치고 강제 징용 배상 등에 대한 정부 입장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 일본이 한·일 청구권협정상 분쟁 해결 절차를 요청했지만, 외교부는 입장을 정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를 현 정부가 파기한 것도 한국의 입장에서만 볼 게 아니다. 국제 협약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뒤집은 한국의 잘못도 분명히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한·일 갈등을 대하는 청와대와 정부의 태도다. 양국 관계가 악화할 대로 악화하더라도 뭔 대수냐 하는 식이다.

명심해야 할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긴 것은 미국뿐 아니라 일본과 맺은 통화스와프 협정의 힘이 컸다는 점이다. 1997년 외환위기도 일본의 한국에 대한 구제금융 제공을 미국이 막는 바람에 현실화했다.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에 시달리는 지금, 달러화에 이은 제2의 기축통화국이자 3위 경제 대국과 관계를 더 긴밀하게 못할 망정 현상유지는 해야 하는 게 국정운영의 상식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