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들어진 창작 뮤지컬의 등장은 언제나 반갑다. 올봄 공연가에는 국내 창작진의 손을 거쳐 훌륭한 만듦새로 완성된 뮤지컬 두 편이 각각 공연 중이다. ‘HOPE: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이하 ‘HOPE’)과 ‘1976 할란카운티’이다.
‘HOPE’는 현대문학의 거장 요제프 클라인의 미발표 원고 소유권을 놓고 30년간 이어진 이스라엘 국립도서관과 78세 노파 호프의 재판을 배경으로, 평생 원고만을 지켜 온 호프의 생애를 그린다. 독일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유작 반환 소송 실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18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뮤지컬 부문 선정작으로, 지난 1월 초연됐다. 초연이 끝난 지 채 2개월도 안 돼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무대에 오르게 됐다. 공연은 오는 5월 26일까지 이어진다.
오루피나 연출과 신진 크리에이터인 강남 작가, 김효은 작곡가가 협업한 ‘HOPE’는 독창성을 높이 평가받았다. 사건의 큰 틀만 따왔을 뿐 실제 재판과 다른 시각으로 접근했다. 캐릭터의 서사나 배경 또한 재구성됐는데, 호프를 통해 스스로 성장하는 주체적 여성 서사를 완성해낸 점이 눈길을 끈다.
타이틀롤인 호프 역에는 김선영과 차지연이 더블 캐스팅됐다. 클라인의 원고를 의인화한 캐릭터 K역은 고훈정과 조형균 장지후가 맡았다. 고훈정은 최근 프레스콜에서 “K는 결국 호프의 자아인데, 호프가 자기 인생으로 한 발짝 나아가길 염원하는 주체적 인물로 그리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김선영은 “관객들이 호프를 통해 용기와 위로를 얻을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고, 차지연은 “연령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 만큼 이 작품의 따뜻한 진심이 관객들께 가닿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1976 할란카운티’는 1970년대 미국 노동운동의 이정표가 된 할란카운티 탄광촌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배우와 무술감독, 연출가 등 다방면에서 활동해 온 유병은 연출의 첫 극작 작품이다. 부산문화재단 청년연출가 제작지원사업 선정작으로, 올초 부산 초연을 마치고 서울에 입성했다.
출연진의 앙상블이 좋다. 부산 공연에 오른 강성진 류수화 김상현 서승원 등을 비롯해 김다현 이지숙 원종환 윤석원 등 실력파 배우들이 합류했다. 유 연출은 “누구 하나의 힘이 아닌, 모두가 함께 만든 공연이다. 관객들께 작은 희망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5월 5일까지 서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