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집의 시간 잇는다는 생각으로 낡은 것 사용”

입력 2019-04-08 21:00
일제 강점기 지어진 한옥을 수선한 이현화 혜화1117 대표는 최근 서울 종로구 자택 겸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옥은 세월을 쌓아가는 동반자 같다. 한옥에는 계속 손이 가고, 집을 이루는 나무는 시간에 따라 뒤틀리면서 조금씩 움직인다”고 말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도시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대다수가 아파트에 살다 보니 고즈넉한 한옥에 사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런 도시인의 로망을 실현한 이현화(49) 도서출판 혜화1117 대표를 최근 자택이자 사무실인 서울 종로구의 아담한 한옥에서 만났다. 이 대표는 “돈이 아주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마음만 먹으면 한옥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나무 향이 은은한 집에는 바흐의 성가가 흐르고 있었다. 그는 이태 전 여름 1936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작은 한옥(대지 85㎡·건물 52㎡)을 사고 지난해 봄부터 집을 고쳤다. 94년부터 출판사 편집자로 일을 시작한 그는 직장 생활 4년차에 다세대주택 방 한 칸짜리 집으로 처음 독립을 했고, 월세와 전세를 거쳐 마지막으로 경기도 고양 일산의 작은 아파트(73㎡)에 살았다.

이 대표는 노후를 생각하며 집을 보러 다녔다. 그러다 서울 시내 오래된 동네에서 이 집을 만났다. 아파트에서 나와 그동안 모은 돈을 보탰다. 옛집의 시간을 잇는다는 생각으로 가능한 한 낡은 것을 썼다. “사실 다 허물고 짓는 건 더 쉽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기둥을 살리고 구들로 쓴 돌을 마당으로 내고 오래된 기와를 그대로 썼다”고 했다.

집을 지으면서 배운 것도 있다. “나름 편집자로 철저히 살아왔다. 서까래 간격이 똑같은지 종이를 대봤다. 근데 어느 순간 집 짓는 분들도 다 최선을 다해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호 하시는 분은 ‘20년 경력은 연장도 들 줄 모르는 애송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이어 “25년 정도 책을 만든 나도 그분의 기준에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교정지 줄 간격 맞추듯 집을 짓기 바라는 게 내 편협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웃었다.

한옥에 사는 건 어떤 느낌일까. “아파트가 실용적인 도구라는 느낌이라면 한옥은 정서적 교감의 공간 같다. 아침에 일어나 문을 열고 하늘을 보면 기분이 참 좋다. 밤에 고요한 시간도 좋다. 이 집에 살면서 비염이 없어졌다”고 했다.

불편도 적지 않다. “지난해 가을 수리가 70% 정도 된 상태에서 입주했다. 겨울에 좀 추웠다. 비가 오면 물이 막히지 않는지 잘 살펴야 한다. 추울 땐 별채에 물건 가지러 갈 때도 파카를 입고 목도리를 싸매고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옥에 살고 싶다면 전세나 월세로 일정 기간 지내보고 살 것을 권유했다. 투자 가치도 크지 않고 불편한 점도 많기 때문이다.

그는 집을 고치면서 자신이 대표인 1인 출판사를 차렸다. 황우섭 사진작가와 함께 낸 신간 ‘나의 집이 되어가는 중입니다’는 이 출판사의 네 번째 책이다. “난 여전히 책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한다. 책이 나오고 나니 진짜 나의 집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그의 책은 인테리어 북이 아니다. 역사와 공간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집 한 채를 찬찬히 수리하는 과정을 담은 교양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