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야당 원내대표가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을 ‘반 대한민국 공산주의자’ ‘뼛속까지 북한공산주의자’라 했다. 약산이 그런 말을 들을 만한 역사적 약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약산을 대신해 처조카인 제가 국가와 민족 앞에 사죄드리고 싶다.
하지만 말은 가려서 해야 한다. 새는 그 노래로 알고 사람은 하는 말로 그 인격과 품위를 알 수 있다. 정치지도자가 뱉은 말은 온 국민이 듣는다. 젊은이들이 듣고 배운다. 역사에 별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도 그렇게 믿게 된다. 정치지도자는 역사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져야 한다. 키케로는 “역사의 제일 법칙은 그릇된 어떤 것도 마구 기술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정확한 지식도 없이 마구 내뱉은 말이 사실인 것처럼 언론에 보도됐을 때 역사 왜곡이 일어난다.
약산이 북으로 간 것은 ‘뼛속까지 북한공산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라고 많은 사학자들이 말하고 있다. 약산은 머나먼 중국 땅에서 국가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해방된 조국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감격과 희망은 한순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약산을 가로막은 것은 일본 순사가 아니라 한민족인 내 동포였다. 일제강점기 서슬 퍼런 일제 경찰과 헌병대도 최고의 현상금을 걸고 약산을 체포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약산은 해방된 조국 땅에서 동포의 간교한 오랏줄에 묶어 유치장에서 갖은 수모를 당했다. 그 심정을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먼 이국땅에서 국가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애쓴 결과가 차디찬 유치장에서의 피눈물 나는 통곡이었다. 그 수모를 겪고 난 후 약산은 그토록 그리던 고향산천을 등지고 북으로 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뼛속까지 북한공산주의자’이기 때문에 북으로 간 게 아니다. 약산뿐만이 아니다. 해방된 조국의 발전을 위해 한 몸 바치려 했던 많은 독립투사가 암살당하거나 북으로 가야만 했다.
해방정국에서 빚어진 혼란상을 아직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이념적 갈등의 소재로 삼는 것을 볼 때마다 참담한 심정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역사에 대한 지식도 철학도 없이 정치하는 이들이 늘어가니 우리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이다. 이제 현명한 국민들이 판단을 해야 한다.
한 사람에 대해 평가하려면 제대로 알고 해야 한다. 아는 것은 좁쌀만큼인데 말하는 것은 태산만큼이니 문제가 생긴다. 묻고 싶다. 약산이 ‘뼛속까지 북한공산주의자’라고 한 근거는 무엇인가. 약산의 삶의 궤적을 연구해본 적은 있는가. 한 사람을 쉽게 평가해선 안 된다. 자칫 명예살인, 인격살인이 될 수 있다. 결국 자신의 인격적 문제점도 고스란히 노출된다. 성경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한다. 우리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내로남불’로 상대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를 이끌어 나갈 젊은이들이 배울까 두렵고 걱정스럽다.
‘정치는 예술’이라고 한다. 한국 정치인들은 예술적인 능력으로 거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을까. 버나드 쇼는 “예술은 채찍을 사용하지 않고 인간을 교육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 했다. 정치지도자들에게 부탁한다. 손에 든 채찍은 던져버리고 예술적인 생각과 뜨거운 마음으로 추하게 퇴색돼가는 사회 구석구석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주기 바란다.
박의영 목사(전 경성대 교목)
◇박의영 목사는 경성성서학원을 졸업하고 신간회와 의열단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 박문희 전도사의 아들이다. 박 전도사의 동생 박차정은 김원봉의 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