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밤부터 5일 새벽까지 강원도로 향하는 고속도로에는 전국의 소방차 행렬이 이어졌다. 정부는 산불이 속초 시내 등을 위협하자 대응 수준을 곧바로 3단계로 올리고 전국의 소방차를 소집했다. 사상 최대 규모의 소방차와 헬기가 동원됐다. 3000여명의 소방공무원과 산림청 직원, 군인·경찰·공무원 등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동참해 산불과 사투를 벌였다.
온라인에서도 움직임이 바빠졌다. 화재 현장 근처 주민들은 강렬한 불길의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 유튜브 등 SNS에 실시간으로 올렸다. 산불 위치와 주변 대피소 정보를 알려주는 사진과 동영상도 올라왔다. 불특정 다수가 해당 게시물에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댓글로 달기 시작하면서 게시글은 실시간으로 정보가 업그레이드됐다.
지난 4일 발생해 고성과 속초, 강릉 등 동해안을 휩쓴 산불이 다행히 초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희생을 감수한 공무원과 성숙한 시민의식 덕에 대형 재난 때마다 공식처럼 등장했던 ‘인재(人災)에 의한 2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재난대응 시스템도 효율적으로 작동했다. 군경은 지역주민을 비교적 빨리 대피시켰고, 폭약을 신속히 옮기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고성군에 체험학습을 갔다가 관광버스에 불이 붙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만난 경기도 평택 현화중 학생 199명도 인솔 교사들의 사전 안전훈련과 신속한 대응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주영래(60) 속초시번영회장은 “불이 속초로 급속히 번져 많은 주민이 놀랐지만 전국에서 몰려온 수많은 소방차와 헬기, 진화인력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불이 진압됐다”고 말했다.
수준 높은 시민의식은 구호활동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강원도 고성 산불 나흘째인 7일 임시 대피소가 마련된 고성군 천진초교 체육관은 전국에서 달려온 봉사 차량과 봉사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대한적십자사봉사회가 마련한 임시 식당에서 늦은 점심으로 허기를 달랜 고성지구협의회 엄기인(62) 회장은 “이웃뿐만 아니라 우리 집 역시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며 “대피소 생활이 길어지면서 몸과 마음이 지치긴 하지만 봉사자들 덕분에 힘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봉사도 진행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관계자는 “산불로 인해 다량의 연기를 흡입한 주민들이 이비인후과와 안과 진료를 받았다”며 “9일에도 봉사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피소 앞은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급식차, 구세군 긴급구호본부, KB국민은행 희망밥차,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등이 봉사활동을 펼쳤다.
정부 차원의 피해 복구와 이재민 지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일 고성군·속초시·강릉시 등 5개 시·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고, 7일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피해 현장을 방문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주택 180가구, 정부 연수시설 96실 등 정부가 가진 모든 자원을 동원해 이재민 주거 안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또 복구 계획이 확정되는 대로 재난대책비를 즉각 집행할 방침이다. 재난대책비로 사용할 수 있는 목적예비비는 1조8000억원 규모다.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이날 오후까지 73억6500여만원이 모금됐다고 밝혔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도 25억여원이 기부됐다. 모금이 시작되고 이틀 만에 100억원에 가까운 기부금이 모인 셈이다. 가수 싸이와 아이유, 배우 이병헌·이민정씨 부부가 각각 성금 1억원을 내놓았으며, 부영그룹은 이재민들에게 224가구의 임대아파트를 긴급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정부에 전달했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 교수는 “2017년 정부가 안전처 조직에서 ‘소방청’을 분리하면서 독립적으로 소방 인력, 자원을 지휘하는 게 수월해졌다”며 “이번 산불이 비교적 초기에 잡힐 수 있었던 건 조직개편안에 따른 소방력 강화 덕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영동 지역의 지형적·기후적 요인에 따른 예고된 재난에 대처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속초=서승진 기자, 안규영 정현수 기자 sjse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