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은 이른바 ‘보수 빅텐트론’의 불을 지피고 있다. ‘사실상의 승리’라고 자평하는 보궐선거지만, 창원 성산 선거구에서 정의당과 더불어민주당 단일 후보에게 504표 차로 석패한 것은 범진보 연합군에 대항할 보수진영 통합의 필요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6일 유튜브 방송 ‘신의 한 수’에 출연해 “이번 창원 선거에서 대한애국당 후보가 표 0.8%(838표)를 가져간 게 너무 아쉽다. 그게 우리한테 왔으면 정의당 성지인 창원에서도 우리가 이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 역시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헌법 가치를 같이하는 모든 정치 세력이 함께 통합하는 꿈을 꾸고 있다. 우리가 단단하게 다져지면 외연이 넓혀질 것”이라며 보수통합 추진 뜻을 밝혔다.
황 대표는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 입지를 더욱 확고히 했다는 평을 듣는다. 이를 토대로 바른미래당 일부부터 대한애국당까지 묶어 중도층과 강성보수 양쪽으로 영역을 넓히는 대통합 방안을 모색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정계개편의 태풍의 눈은 바른미래당이다. 바른미래당이 다음 총선 때까지 존속될지, 분열되면 어떤 방식으로 갈라설지 등에 따라 정계개편 전체 시나리오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손학규 대표는 보궐선거 참패 이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뭉쳐서 이길 준비를 하자”고 호소했지만, 현실적으로 바른미래당 지도부의 구심력은 힘을 잃은 상태다. 안으로는 이념·정체성 갈등을 반복해온 바른정당계와 국민의당계 간 반목이 심해져 “이제 깨끗하게 갈라서서 제 갈 길을 가는 게 바람직하다”(이찬열 의원)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 됐다. 당 밖에서는 경쟁 정당들이 “우리 쪽으로 오라”며 바른미래당 의원들에게 계속해 손짓하고 있다. 당원권 1년 정지라는 징계가 내려진 이언주 의원의 경우 사실상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 일만 남겨둔 분위기다. 이 의원은 이날도 “당이 좌파 2중대 정당으로 전락했다”며 비판을 이어갔다.
평화당과 바른미래당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제3지대론’도 고개를 든다. 친문(문재인)이 장악한 민주당과 보수 색깔이 강한 한국당 어느 쪽도 선택하기 어려운 이들이 새로운 정치 세력을 만들어보자는 움직임이다. 2016년 20대 총선 때 ‘녹색 돌풍’을 일으키며 38석이라는 성과를 냈던 국민의당 때의 영광을 재연하자는 바람도 담겨 있다. 최경환 평화당 의원은 지난달 30일 “이대로는 내년 총선에서 모두 죽는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며 중도개혁 노선, 호남의 정치 주도권 회복 등을 위한 제3지대 구축을 제안했다. 평화당과 정의당의 공동교섭단체 재구성 논의가 예상 밖 난항을 겪는 배경에도 평화당 내부의 이 같은 기류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평화당 관계자는 “당장 공동교섭단체를 급하게 구성할 필요는 없다”며 “총선이 가까워지면 민주당이나 바른미래당을 이탈하는 의원들이 우리당에 들어올 가능성도 열어두고 충분히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호일 심희정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