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선(산불의 경계) 길이를 보고 죽었구나 싶었어요.”
김현철 산림청 강릉산림항공관리소 운항관제팀 기장은 6일 강원도 강릉 옥계면 산불 현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5일 김 기장 등이 탑승한 진화헬기가 현장에 도착했을 땐 높고 험준한 산맥을 타고 불길이 동시다발적으로 번지고 있었다.
무려 3㎞ 길이의 화선 2개, 1㎞ 이하 화선 6개가 눈에 들어왔다. 불의 규모가 진화를 방해하는 장애물의 전부는 아니었다. 당시 순간 풍속은 40노트(kn·초속 20m가량)로 바람에 기체가 돌아갈 정도로 강풍이 몰아쳤다. 연기가 자욱해 시야 확보도 어려웠다. 비행경력 28년의 김 기장도 손이 떨렸다. ‘추락을 피하고 진화에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조종대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지난 4일 속초·고성에 이어 강릉에서 발발한 강원도 산불 현장에는 강릉산림항공관리소 직원이 모두 진화에 투입됐다. 이곳에서 각 팀원들은 아직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은 산불을 끄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운항관제팀은 하늘에서, 안전항공팀은 산속에서 며칠간 불을 끄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번 산불이 강풍 등 악조건 속에서도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진화된 데엔 보이지 않은 곳에서 헌신한 이들의 힘이 컸다.
헬기 조종사들은 화염과 연기 속에서 고압선을 피하는 게 가장 어렵다고 했다. 2017년 강원도 삼척 도계읍에 발생한 산불 진화과정에서 산림청 헬기 한 대가 고압선에 걸려 추락해 검사관 1명이 사망했다. 김 기장은 “이번 진화과정에서도 옥계한라시멘트 공장 쪽으로 불이 확산되는 걸 막기 위해 고압선과 사투를 벌였다”고 했다. 안성철 운항관제팀 기장은 “연기를 뚫고 한참 작업을 하다 고압선이 바로 눈앞에 보여 흠칫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며 “산림헬기는 호스도 달고 있어 걸리기만 해도 전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헬기에 물을 채워 넣는 담수(湛水) 과정도 고도의 집중력을 요한다. 수면에 호스를 넣어 물을 빨아 당겨야 하기에 수면에서 1.5m 위치에서 저공비행해야 한다. 산림헬기의 호스 길이는 2.5~3m다. 김 기장은 “옥계 저수지에 산림헬기 6~7대가 동시에 물을 뜨기도 했다”며 “프로펠러 바람에 물이 튀어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다른 산림헬기와 충돌하면 안 되기에 조종대를 잡은 손에 식은땀이 났다”고 말했다.
헬기 조종사들은 이번 강원도 산불 진압 기간 일출부터 일몰까지 10시간 이상 연속비행을 했다. 식사시간도 따로 없었다. 보통 화재 현장에서 약 2시간30분 동안 11차례 물을 뿌린 후 급유를 위해 항공관리소로 복귀한다. 연료를 채우는 10분이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김영철 운항관제팀장은 “대부분 인원이 육·해·공군의 항공병과에서 조종하던 장교 출신”이라며 “최소 15년 이상 비행만 한 베테랑이기에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적인 화재 진압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 팀장은 이번에도 지휘통제기를 타고 산림·소방·군·민간 헬기 24대를 지휘했다. 그는 지난 5일 일몰시간 직전 옥계면 산불현장의 불씨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목격하고 연료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도 진화를 마쳤다.
지상에서 화마와 사투를 벌인 안전항공팀원들은 각자 방화도구인 불갈퀴 한 자루만 들고 불길이 치솟는 험준한 산에 올라 1~2m 너비의 방화선을 곳곳에 구축했다. 방화선 구축은 화재가 번지지 않도록 산불 진행 경로에 있는 가연성 연료를 모두 제거하는 작업이다. 전형규 팀원은 “불길이 도로를 뛰어넘어 말처럼 달려들 정도로 현장은 전쟁터 같았다”며 “강한 바람에 불씨가 방화선을 넘어갔을 때에는 맨손으로 불씨를 잡아 방화선 안쪽으로 던졌다”고 말했다.
이들의 노고를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다. 홍성민 안전항공팀장은 “산불이 났을 때는 산림청 직원들이 진화현장 최전선에 투입되지만 이번에도 ‘너희는 산불이 났는데 어디 있었느냐’는 말을 들었다”며 “서운할 때도 있지만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도 산림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글·사진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