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에 드는 비용을 전액 건강보험에서 끌어다 쓰기로 했다. 여당에서조차 “국민에게 부담을 떠넘긴다”는 비판이 나온다.
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르면 올 하반기부터 일정 규모 이상 의료기관은 비상벨과 비상문, 보안인력을 의무적으로 둬야 한다. 지난해 12월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고(故) 임세원 교수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조치다. 복지부는 지난 4일 관련 대책을 발표했다.
문제는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건강보험에서 나가도록 정책이 설계됐다는 것이다. 김승희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건강보험료가 부족해 적자가 난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여당인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런 일(의료진 폭행)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데 대한 대책을 소비자에게만 넘기는 건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예산에서) 적절한 분담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복지부는 “비상벨과 비상문의 경우 (비용 지출이) 일회성”이라고 했지만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비상벨을 유지하는 데만 연간 300만원이 든다. 현재 보안인력과 연결된 비상벨이 있는 병원은 40% 정도다. 경찰과 연결된 곳은 훨씬 적다. 정부 방침에 따라 비상벨을 설치하는 병원이 대거 생기면 이 비용은 고스란히 건강보험 몫이 된다.
복지부는 보안인력 배치 비용도 응급의료 수가에서 지출하는 안을 검토 중이다. 보안인력은 1인당 연 2000만~3300만원의 인건비가 든다. 전국에 응급의료기관이 520여곳 있고 1곳당 24시간 근무하는 보안인력이 최소 4명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복지부는 1년에 624억원가량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보안인력 가운데 청원경찰 배치에 수가가 아닌 예산 지원은 어렵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복지부는 7일 “고용주가 비용을 부담하는 현행 청원경찰법 개정 없이는 재정지원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조항은 ‘정부의 비용지원 금지’로 해석되지 않는다. 의료계는 폭력을 휘두르는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청원경찰 배치에 더 많은 지원을 원하고 있다.
진료환경 개선에까지 건강보험이 투입되면서 재정에 대한 우려가 커질 전망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 2017~2022년 건강보험 기금 30조6000억원을 쓸 예정이다. 누적적립금 20조원을 활용하고 부당하게 새는 건강보험료를 막는 식으로 재정절감을 병행한다는 계획인데 이 재정절감이 효과를 못 내면 기금은 2026년 바닥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기금이 흑자를 유지하려면 건강보험료 인상률을 2026년 4.90%까지 높여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국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도 2018년 6.24%에서 2026년 8.16%로 뛴다. 복지부는 “보험료 인상률을 2007~2016년 평균인 3.2% 수준에서 관리한다”지만 올해 3.49% 올려 8년 만에 최고 인상률을 기록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